선조(宣祖)께서 즉위하신 뒤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등을 등용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정치를 논하였다. 남곤(南袞)의 관작(官爵)을 박탈하고, 또 을사사화(乙巳士禍) 이래 억울함을 당한 이들을 풀어 관작을 되돌리고 이들을 채용했으며, 윤원형(尹元衡), 이기(李芑), 정순붕(鄭順朋), 임백령(林百齡) 등의 훈적(動籍)을 삭제하였다. 이와 같이 수십 년의 억울함을 풀어 주어 인심을 위로하였으나 폐정이 쇄신되지는 못하였다. 여러 차례의 사화가 일어나 일시에 인재를 살육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