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동국사략 하
  • 동국사략 권3
  • 근세사 - 조선기(朝鮮記) 상(上)
  • 임진왜란[壬辰亂]
  • 임진왜란 전의 조선

임진왜란 전의 조선

선조(宣祖) 초에 동인(東人), 서인(西人)의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붕당의 풍조가 생겼을 뿐 아니라, 기강이 점차 무너지고 군사 방비가 해이해져서 사람들이 점차 태만하고 게을러졌다. 성혼(成渾)과 이이(李珥) 등이 여러 차례 상소하여 당시의 폐단을 논하였고, 이이는 또 군사 10만【도성 2만, 각 도(道) 1만씩】을 양성하여 위급할 때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유성룡(柳成龍)은 “태평한 시기에는 성학(聖學)이 우선할 일이고 군대는 급할 것이 없다. ”고 하여 그 말을 배척하였고 모든 조정 신료가 부응하였다. 비록 북쪽 변방에서 위험을 경계하는 보고가 때마다 올라왔으나 모두 눈앞의 무사함에 익숙해져 국방 업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때에 또 충직한 인사가 물러가고 인빈 김씨(仁嬪金氏)가 권세를 부리는데, 영의정(領議政) 이산해(李山海)가 자기 형 이공량(李公諒)과 함께 표리로 상응하였다. 이에 인심이 크게 무너지고 요동(遼東)과 일본(日本)으로 가서 의탁하는 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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