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부산(釜山)에서 세 갈래로 나눠 한양[京城]1)원문에는 일제 강점기의 서울 이름인 경성으로 되어 있으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조선 시대의 서울 지명인 한양(漢陽)으로 수정하였다.으로 진격하였다. 중로(中路)는 보통의 경로로, 부산에서 조령(鳥嶺)을 넘어 충주(忠州)를 거쳐 한양에 도착하였다. 동로(東路)는 기장(機張), 울산(蔚山)에서 죽령(竹嶺)을 넘어 충주에서 중로군과 합쳤다. 서로(西路)는 김해(金海)에서 추풍령(秋風嶺)을 넘어 청주(淸州), 죽산(竹山)으로 해서 한양에 다다랐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중로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동로로, 구로다 나가마사는 서로로 진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