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조헌이 의승(義僧) 영규와 함께 금산(錦山)의 적을 공격하였다. 처음에 조헌이 군사 1천 6백 명을 모으고 영규가 승군으로서 합류하여 청주(淸州)로 나아갔다. 이윽고 조헌이 금산의 적이 많다는 말을 듣고 급습하고자 하였으나, 전라 감사(全羅監司) 허욱(許頊)과 충청 감사(忠淸監司) 권율(權慄)이 다 말렸다. 이에 조헌이 노하여 군사 7백여 명을 골라 금산으로 향하였다. 영규가 다투며 말하기를, “관군이 지원하러 온 뒤에야 들어갈 수 있다.” 하였다. 조헌이 울며 말하기를, “지금 임금께서 어디 계시는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는 것이 바로 이때다. 성패에 이로운지 아닌지는 알 바 아니다.” 하고 북을 울리며 나아갔다. 영규가 말하기를, “우리 공(公)을 혼자 죽게 할 수 없다.” 하고 곧 진을 합쳐 금산성 밖에 다다랐다. 적이 조헌 군대의 지원군이 없음을 알고 군사를 다 모아 출격하자, 조헌이 “오늘은 오직 죽음뿐이다.” 하고 명하니 장졸이 모두 승낙하였다. 오랫동안의 싸움에 화살이 떨어지고 적이 급습하자, 조헌이 막사 안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북을 울리며 싸움을 독려하였다. 이에 장졸들이 빈손으로 치고 받으며 한 사람도 자리를 뜨는 자가 없이 모두 조헌과 함께 죽었다. 이 전투에서 적이 비록 조헌을 이겼으나 그들 역시 사상자가 많았고 또 군관이 지원하러 올까 두려워하여 인근의 주둔병을 거두어 되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호남이 다시 온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