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등이 심유경(沈惟敬)이 기한을 어기는 것을 보고 의심하여 공성(攻城) 도구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이윽고 심유경이 와서 명(明)나라가 화친을 허락하였고 인질을 보낸다고 하였다. 또한 명나라에서 사신을 보낸다고 하였다. 심유경이 요동(遼東)으로 돌아오자 이여송(李如松)이 심유경을 목 베고자 하였다. 이에 참군(參軍) 이응식(李應軾)이 방책을 올리기를, “심유경을 빌려 왜를 속이고 그렇게 해서 왜를 엄습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심유경을 군중(軍中)에 구류하니 강화의 일이 마침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