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동국사략 하
  • 동국사략 권4
  • 근세사(近世史) - 조선기(朝鮮記) 하
  • 만주(滿洲)의 침략과 강화
  • 왕이 송시열(宋時烈)과 이완(李浣)을 깊이 신임하다

왕이 송시열(宋時烈)과 이완(李浣)을 깊이 신임하다

그러나 효종(孝宗)께서는 뜻과 기개가 꺾이지 않으셨다. 송시열, 송준길(宋浚吉) 등이 또한 군사를 쓸 것을 권하였으므로 왕이 송시열과 이완을 깊이 신임하여 송시열에게는 초구(貂裘)를 하사하고 이완에게는 어갑주(御甲胄)를 하사하여 북벌 때에 쓰도록 하셨다.

또 이완을 훈련대장에 제수하고 왕이 군사를 친히 검열하기가 여러 차례였다. 융복(戎服)의 옷소매가 길고 넓다 하여 짧고 좁게 하였다. 승려는 쌀 3석을 내고 공경(公卿)부터 서사(庶士) 중에 요역이 없는 자는 포 1필을 내어 군사 자금을 마련하였다. 내구(內廐)에 좋은 말을 길러 벌대총(伐大驄)이라 하고, 혁사(革射)를 고쳐 기사(騎射)라 하고, 금군(禁軍)을 늘렸다. 백방으로 청(淸)나라를 치고자 하시니 사대부 중에도 왕이 북벌하고자 하심을 듣고 장토(庄土)를 팔아 전마(戰馬)를 갖추고 융복을 구비하여 종군하고자 하는 자가 적잖았다. 불행하게도 왕이 재위 10년(1659)에 돌아가시니 그 실행을 보지 못하였다. 또 이때 청나라는 세조(世祖)가 재위하였는데, 나라의 위세가 날로 성해지니 조선(朝鮮)의 힘으로 복수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후대에서는 왕의 큰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매우 애통하게 여겼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