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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남설을 금하고 사원(祠院)을 헐다

지난날 중종(中宗) 때에 풍기(豊基)【경상도】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선유(先儒) 안유(安裕)【고려(高麗)인】의 옛 거처에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웠는데 그 후 점점 쇠락하였다. 명종(明宗) 5년(1550), 지금으로부터 356년 전1)원문에는 357년 전으로 되어 있으나, 356년 전으로 바로잡는다.에 이황(李滉)이 감사(監司) 심통원(沈通源)에게 건의하여 조정에서 편액(扁額)을 하사하고 서원이라 하였다. 또 삼대전(三大全)2)『사서대전(四書大全)』, 『오경대전(五經大全)』‚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말한다. 과거 시험의 주요 교재였고 경학 연구에도 기본 교재로 쓰였다. 등을 내리니 이것이 서원의 시초였다. 그 후 점점 각 도에서 일어나다가 숙종(肅宗) 때에 이르러 더욱 많아져 재위 46년간에 세워진 것이 150여 개가 되었는데, 그 중 경상도에 있는 것이 70여 개였다. 효종(孝宗), 현종(顯宗), 숙종 이래로 여러 차례 서원이 거듭하여 설치되는 것을 금하다가 영조(英祖) 17년(1741), 지금으로부터 165년 전3)원문에는 166년 전으로 되어 있으나, 165년 전으로 바로잡는다.에는 사원【향현(鄕賢)을 제사하는 곳으로 후에 서원이 되었다.】 300여 곳을 헐어 냈다. 그러나 당시의 기풍이 전혀 억압되지 않고 서원이 발흥함에 따라 학문과 의논이 함께 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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