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송시열(宋時烈), 김수항(金壽恒)의 관작을 다시 회복하고, 죽은 오두인(吳斗寅), 박태보(朴泰輔)의 관직을 올려 주었다. 권대운(權大運), 목내선(睦來善), 김덕원(金德遠) 등을 유배 보내고 민암(閔黯), 이의징(李義徵)을 죽여 남인(南人)의 정치를 바꾸었다.
이때 희빈(禧嬪) 장씨(張氏)의 아우 장희재(張希載)가 지난날 희빈에게 서신을 보낼 때 그 내용에 폐후 민씨(閔氏)께 부당하게 간섭함이 있었다. 이에 국문하니 세간의 여론이 모두 장희재를 죽이라고 하였다. 남구만(南九萬), 윤지완(尹趾完)이 그 화가 동궁에 미친다 하여 그 죄를 용서하고자 하였다. 후에 장희재의 노비가 무고(巫蠱) 사건을 고하였는데, 남구만이 또 심하게 다스리지 않고자 하여 장희재를 멀리 유배 보냈다. 그 후 왕후 민씨가 돌아가신 후에 희빈의 무고 사건이 또 발각되었다. 이에 왕이 희빈을 사사하고 또 장희재와 그 외 관계가 있는 궁인과 무녀를 죽이고 그 족당을 멀리 유배 보냈다. 이때는 노론(老論)이 정권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