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종(憲宗)께서 재위 15년(1849) 만에 돌아가시니 나이가 겨우 23세였다. 후사가 없었으므로 순원 황태후(純元皇太后)께서 대신을 모아 왕통을 이을 방안을 의논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정원용(鄭元容)은 전계군(全溪君) 이광(李㼅)【영조(英祖)의 손자 은언군(恩彦君) 이인(李裀)의 아들】의 셋째 아들을 맞이하여 왕위를 잇게 하고자 하고, 좌의정(左議政) 권돈인(權敦仁)은 도정(都正) 이하전(李夏銓)을 세우고자 하여 논의가 정해지지 않았다. 얼마 후 정원용이 순원 황태후의 뜻을 받들어 철종(哲宗)을 강화(江華)에서 맞이하여 세웠다. 이때 전계군은 이미 죽었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친히 밭을 갈고 짚신을 짜다가 정원용이 와서 맞이하니 온 집안이 놀라 감히 길에 오르지 못하였다. 정원용이 황태후의 뜻을 간곡히 타일러 모시고 오니, 이 사람이 철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