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지나(支那)에서는 영국(英國)과 프랑스[佛國]가 연합하여 북경(北京)을 공격하였다. 청(淸)나라 군사가 대패하여 문종(文宗) 혁저(奕詝)가 열하(熱河)로 도망하였다. 조선(朝鮮)이 이 일을 듣고 크게 놀랐고, 혹자는 상소하기를 “이웃 나라의 병란과 천주교(天主敎) 신도의 이단과 프랑스 군사의 침략 등이 눈앞의 우환이니 속히 이 일을 강구함이 옳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러시아[露國]가 만주(滿洲) 동부 수천 리 땅을 취하니, 조선과 두만강(豆滿江)을 사이에 두고 국경이 서로 접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외척과 대신 등이 크게 두려워하여 곧 침략을 당할까 근심하였다. 그러나 권세의 쟁탈은 여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