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崔冲)이 후학(後學)을 불러들여서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니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길가1)원문에는 권(卷)으로 되어 있으나, 항(巷)으로 바로잡는다.에 가득 넘쳐났다. 드디어 9재(九齋)에 나누어서 가르치니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시중(侍中) 최 공의 제자는 나누어 서는 것과 나아가고 물러남에 예의가 있다.”고 하였다. 동방(東方)에 학교를 세우는 것은 대개 최충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세상 사람이 해동공자(海東孔子)라 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