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사암 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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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政事巖會議 |
유형 | 제도 |
시대 | 삼국 시대 |
관련국가 | 백제 |
유의어 | 정사암 고사(政事巖故事) |
별칭•이칭 |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정사암(政事巖)에 대한 고사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백제의 수도사비(泗沘) 부근의 호암사(虎巖寺)라는 절에 바위가 하나 있었다. 나라에서 재상을 선출할 때 후보자 서너 명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상자에 넣고 봉한 후 그 바위 위에 올려놓는다. 얼마 뒤에 상자를 열고 종이를 보면 재상이 되어야 하는 사람의 이름 위에 도장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재상 선출 등 국가의 중요한 일이 결정되던 장소였기 때문에 이 바위를 정사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사암은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는 일종의 성소(聖所)였다. 고대에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이러한 곳에서 제사 지내면서 하늘의 뜻을 묻는 전통이 있었다. 신라에도 네 곳의 신령스러운 땅에서 대신들이 모여 큰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실현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화백 회의(和白會議)처럼 백제에도 국정 운영을 위한 귀족들의 회의체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 회의가 정사암 같은 곳에서 열렸을 것으로 추정되어 정사암 회의라고 부른다. 백제의 제2관등인 달솔(達率) 이상의 귀족이 이 회의에 참석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