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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제목 금성
한자명 金城
유형 지명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신라, 통일 신라
유의어 금경(金京), 대경(大京), 동경(東京), 경주(慶州)
별칭•이칭
정의
신라의 초기 왕성(王城) 혹은 수도의 이름.
내용

금성(金城)은 원래 신라의 수도에 쌓은 성곽의 이름이었다. 서기전 37년(신라 혁거세 거서간 21년) 신라의 서울에 성을 쌓고 금성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서기전 32년(신라 혁거세 거서간 26년) 금성 안에 궁궐을 짓고 왕이 거주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에 따르면 101년(신라 파사 이사금 22년) 파사 이사금(婆娑尼師今, 재위 80∼112)은 월성(月城)을 쌓고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로써 신라의 왕성은 금성에서 월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38년(신라 일성 이사금 5년) 금성에 신하들이 정치를 의논하는 정사당(政事堂)을 설치하는 등 금성은 계속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후 월성이 왕성으로 고정되면서 금성은 그 의미가 변화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금성을 궁성의 의미보다는 수도인 경주 그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던 기록도 확인된다.

초기 왕궁을 둘러싼 성곽인 금성의 위치는 현재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금성으로 추정되는 성곽 유적도 없다. 다만 『삼국사기』 「지리지(地理志)」의 기사에 의하면, 파사 이사금 때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쌓고 월성 또는 재성(在城)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금성은 현재의 경주 읍성(慶州邑城) 부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경주 내 유적 분포를 고려하여 경주 황성동(皇城洞) 일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한편 금성을 왕성을 뜻하는 일반 명사로 보고, 월성이 곧 금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 관련자료
금성(金城) 경주(慶州) 동경(東京) 왕경(王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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