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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우리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수많은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시대별로 간략히 서술되어 그 개념과 변천 과정, 성격 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문화·예술이야기>는 한국사 속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주제별로 그 흐름과 변천 과정, 특징과 성격 등을 전문가의 해설을 기반으로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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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인류의 우주 진출을 실현시킨 로켓.
그런데 로켓 원리를 닮은 화약 무기가 수백 년 전에도 있었는데요.
우리 힘으로 만든 화약무기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조선 전기 화약무기 발달의 역사

화약은 중국에서 발명된 폭발성 물질인데요. 고려 말 최무선이 화약 제조법의 비밀을 알아내었고 화통도감이 설치되면서 화약무기 즉, 화기가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화약국을 설치하고 최무선을 제조로 삼아 마침내 화약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그 화포는 대장군포, 이장군포, 삼장군포, 육화석포 (중략) - 『태조실록』 태조 4년(1395) 4월 19일

이때 만들어진 화기는 대부분 대형 화기로 상세한 형태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이름만은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약무기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시기는 조선 전기인데요.
특히 세종대에 화기의 개발과 성능 개량이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그 중 주목할 것은 일발다전법의 성공!

여러 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었던 총통의 개발은 전투에서 화기의 위력을 한층 향상시켰습니다. 또한 어린이도 사용이 가능할 만큼 작고 가벼운 개인용 화기도 개발됐는데요. 세총통은 지상전에서 손쉽게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주화를 개량한 신기전도 세종대의 것인데요. 이후 문종이 개발한 화차와 결합하여 조선시대 독자적인 화약무기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중신기전 1백 개를 꽂아 두거나 혹은 사전총통 50개를 꽂아 두고 불을 심지에 붙이면 연달아 차례로 발사하게 되었다. - 『문종실록』 문종 1년(1451) 2월 13일

문종 화차는 중신기전 100개 혹은 사전총통 50개를 장착할 수 있었는데요. 장착한 화약무기를 동시 또는 연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어 큰 위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화약무기의 발사원리와 과학기술

전통 화기는 크게 총통류와 완구류로 구분되는데요. 총통류는 주로 화살이나 철환을 발사체로 하여 낮은 각도로 발사하기에 용이하며, 완구류는 둥근 발사체를 높은 각도로 발사하기에 용이합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기인 총통은 크게 모병, 약실, 포신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모병은 총통을 잡기 위해 나무막대기를 꽂는 부분이고, 약실은 화약을 담고, 도화선인 약선을 꽂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포신은 발사체를 넣는 곳으로, 발사체의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격목 또는 토격을 장착하는 격목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총통을 발사하는 방법은 조선 중기에 기록된 병서, 신기비결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요.

먼저 총을 깨끗이 닦아 준비하고 약실의 심지구멍에 약선을 꽂습니다. 이어서 총신을 통해 화약과 복지, 격목을 차례로 넣어주는데요. 송자로 화약과 격목을 잘 다져준 후 탄알을 발사체로 사용한다면 여러 개의 탄알을 흙과 섞어 잘 다져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장전이 완료되면 약선에 불을 붙여 발사하게 되는데요. 이처럼 복잡한 발사 과정을 노래로 만든 기록이 『신기비결』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기전은 당시 과학기술이 집약된 대표적인 전통화기인데요. 약통 속의 화약에 불을 붙이면 연소 가스가 뒤로 분출되면서 그 힘으로 동체가 날아갑니다. 현대 로켓과 같은 비행 원리로 제작됐죠. 또 안정막대와 날개, 약통의 위치는 신기전이 무게중심을 유지하며 비행하도록 계산돼 있는데요. 당시 사용된 단위는 지금의 0.3mm로 매우 정교했다고 합니다.
또 신기전 100개를 장착해 최적의 각도로 발사되도록 설계한 화차는 당시 발전된 과학기술의 산물입니다.

임진왜란에 사용된 화약 무기

1592년 4월 일본은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공격했습니다.

총통을 계속 쏘아대고 화살을 비 오듯이 쏘아대니 적이 배를 해안에 대고 육지로 올라가 패주하므로 그 배 4척을 불살라버렸다. -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6월 28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전세를 바꾼 계기 중 하나는 조선 전기를 거치며 발전을 거듭한 화약무기였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새롭게 등장한 ‘폭발형’ 발사체가 있습니다. 바로 비격진천뢰죠.

비격진천뢰는 몸체 안에 빙철이라는 쇳조각을 넣고 대나무통을 꽂아 그 안의 목곡에 도화선을 감는데요. 흙과 화약을 넣은 후 발사 준비를 마칩니다. 그런 다음 완구에 장착해 도화선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데요. 적의 위치에 도달한 후 폭발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북 고창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이 추가로 발견되었고, 뚜껑이 처음 발견되기도 했는데요. 비격진천뢰는 폭발물인 줄 몰랐던 일본군에게 ‘귀신 폭탄’으로 불리며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사용된 개인화기는 없었을까요?

임진왜란 전에 개발된 승자총통은 군사들의 개인화기로 보급되어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 등 전투에 사용됐는데요. 총알 형태의 철환을 주로 사용했던 승자총통은 사정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컸습니다.

또 적의 장기는 조총뿐인데, 이것을 막을 물건이 없는가? - 『선조실록』 선조 26년(1593) 윤11월 2일

하지만 일본 조총의 위력에 못 미치는 한계가 있었는데요.
조총은 가늠쇠가 있어 정확한 조준이 가능했고 화승식 점화법으로 원하는 시점에 발사가 가능했습니다. 이에 조선은 신속하게 조총 개발에 착수하여 성공하였고 훈련도감에서 이를 훈련해 전장에 확대해 갔는데요.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은 조총의 성능 개선과 보급에 힘썼고 조총은 조선 후기 대표 무기로 자리 잡게 됩니다.

우리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개발된 화약 무기
첨단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우리만의 독창적인 화약무기는 임진왜란은 물론 크고 작은 전투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고려시대 화통도감에서 시작된 화약무기 개발은 조선 세종대를 거치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2. 신기전은 문종이 만든 화차와 결합하여 더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3. 조선시대 비격진천뢰는 도화선을 감는 횟수에 따라 폭발시간 조절이 가능했다.

해설

1. 조선 전기 화약무기 발달의 역사

화약은 목탄(木炭)과 황(黃), 초석(硝石)을 배합하고 여기에 자극을 주어 연소반응을 일으켜 힘을 얻는 물질로 중국 당대(唐代, 618~907)에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북송(北宋, 960~1126) 시기 화약을 무기에 접목시켜 전투에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975년 송나라가 화포와 화전을 사용했다는 기록과 화약 공장이 건설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때 다양한 화약병기가 생산되었고 이때부터 화기의 보유가 곧 그 국가의 군사력을 결정짓는 주요인이 되었다.

고려 말기 화약과 화약병기가 전래되어 이를 진압하는 데 활용되고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한국에 독자적인 화약무기 체계가 성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1377년(우왕 3)에 판사(判事) 최무선을 제조(提調)로 삼아 화통도감(火㷁都監)이 설치되고 마침내 화약과 화기가 고려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실물이 전해지진 않지만 『태조실록』의 ‘최무선졸기’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가장 기초적 단계로 화전(火箭)을 비롯하여 대장군포(大將軍砲)·이장군포(二將軍砲)·삼장군포(三將軍砲)·육화석포(六花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 등 발사체를 넣어 쏘는 도구인 총포류(銃砲類), 발사체인 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철탄자(鐵彈子)가 함께 주조되었다. 또한 폭탄의 일종인 질려포(蒺藜砲), 화살에 화약통을 달아 쏘는 주화(走火) 등 다양한 형태와 성능을 가진 화약병기가 제조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조선 전기 특히 세종 대 화약과 화약무기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조선만의 독자적인 화기체제가 형성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특히 일발다전법(一發多箭法)의 성공으로 전투에서 화기의 위력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한 번에 2발 내지는 4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이를 적용하여 이총통(二銃筒)·삼총통(三銃筒)·팔전총통(八箭銃筒)·사전총통(四箭銃筒)·세총통(細銃筒) 등 일발다전포(一發多箭砲)가 개발되었다. 이 중에서도 세총통은 어린이와 여자도 사용 가능할 정도로 소형화 된 화기로 지상전에서 손쉽게 사용이 가능한 화약무기였다.

그 외 이 시기에 조선만의 독자적인 화약병기가 개발되었는데 바로 신기전(神機箭)이다. 신기전은 고려 말기부터 생산된 주화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후에 문종 대에 발명된 화차와 결합되어 조선시대 가장 독창적인 화약병기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문종의 화차는 세종 때 만든 중신기전(中神機箭) 100개 혹은 사전총통 50개를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신호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2. 화약무기의 발사원리와 과학기술

한국의 전통 화약병기는 크게 총통류(銃筒類)와 완구류(碗口類)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총통류는 주로 화살을 발사물로 하여 낮은 각도로 발사하기에 용이하다. 완구류는 돌이나 철로 만든 동그란 발사체를 발포하기 위한 것으로 높은 각도로 발사하기에 용이하다. 일반적으로 전통 총통의 구조를 보면 모병(冒柄), 약실(藥室), 포신(砲身)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모병은 총통을 사용할 때 사용상의 편의를 위해 나무막대기를 꽂을 수 있는 부분으로 대형총통에는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약실은 화약을 담는 곳으로 위에 구멍을 달아 일종의 도화선인 약선(藥線)을 꽂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포신은 발사체를 장착하는 부분이며 약실과 포신 사이에 발사체의 추진력을 향상시켜주는 격목(激木) 혹은 토격(土激)을 장착하는 격목통(激木筒)이 자리 잡고 있다. 포신의 외부는 대나무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는 발사될 때 발생하는 열과 충격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총통을 발사하는 방법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는데 1603년 발간된 『신기비결(神器秘訣)』에는 그 방법이 ‘총가’라는 이름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가장 먼저 총을 깨끗이 닦아 준비하고 약실의 심지구멍이 약선을 꽂는다. 이후 총신을 통해 화약과 격목을 차례로 넣어주는 데 이때 화약과 격목이 직접 닿지 않게 격목의 위와 아래에 복지를 끼운다. 그 다음 송자를 총신에 넣어 화약과 격목을 잘 다져주고 발사물을 넣어주는 데 이 때 작은 탄알을 흙과 같이 섞어 다시 송자로 잘 다녀주어야 한다. 발사물을 장착하면 총구를 수평으로 내리고 명에 따라 약선에 불을 붙여 발사한다.

세종 때 개발된 신기전은 화살 촉 부분에 화약통을 달아 화약이 탈 때 발생하는 연소 가스가 분출되는 힘으로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날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현대 로켓과 같은 비행 원리로 『병기도설』에 그 형태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용된 단위는 지금의 0.3mm로 매우 정교했으며 사정거리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발사 각도를 43°로 설계하는 등 매우 발전된 과학기술이 적용되었다.

3. 임진왜란 때 사용된 화약무기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구가 병선을 이끌고 부산 동래부(東萊府)를 함락시키면서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신식 무기인 조총(鳥銃)을 앞세운 왜구의 공세에도 조선은 고려 말 이후 축적된 화약무기와 그 기술을 활용하여 왜란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였다. 천자총통과 지자총통 등 대형화포는 해상전과 수성전에 투입되어 왜군을 진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당시 폭탄의 일종인 비격진천뢰가 개발되어 승기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화포장(火砲匠) 이장손(李長孫, ?-?)이 개발한 것으로 철환 안에 쇳조각과 화선을 감은 막대기가 있어 화약을 넣어 불을 붙여도 바로 폭발하지 않고 발사 후 떨어진 장소에서 터지도록 설계되었다. 왜란 초기 관군이 이를 사용하여 경주성을 수복하는 등 왜란 시 적들을 교란시키고 제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조총은 정밀한 조준이 가능한 최신 기술의 개인화기로 일본은 이를 앞세워 초반 공세를 이어갔고 조선은 왜란 전 개발된 승자총통(勝字銃筒)을 활용하고 조총을 직접 제작하여 이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승자총통은 왜란 전 김지(金墀, ?~?)가 개발한 것으로 그 크기가 전체가 60cm가 되지 않아 휴대에 용이하였으며 총신이 길어 명중률이 높았다. 그러나 승자총통은 지화식 점화법을 사용하여 원하는 시점에 발사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조선은 1593년(선조 26) 생포한 왜인들에게 조총 조제법을 알아내고 본격적으로 조총을 제작하고 그 해 8월 훈련도감(訓鍊都監)을 설치하여 조총을 포함한 화기를 다루는 포수들을 훈련시켜 전장에서 이를 바로 활용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조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2년 만에 왜인들이 가져온 신식무기의 복제에 성공하였고 이를 주요화기로 전장에 배치하여 화력의 열세에 신속하게 대응하였다.

무기는 인류 문명과 함께 발달하였고 그 영향력은 한 국가를 좌지우지할 만큼 팽창해 나갔다. 중국에서 화약을 최초로 제조하고 이를 무기로 활용하면서 대량살상이 가능해졌고 최신 기술의 화약병기를 확보하는 것은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주요 과제였다. 한국 역시 고려 말 화약병기가 유입된 이후 현재까지 화기를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단행본

  • 국사편찬위원회, 1994, 『신편한국사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국사편찬위원회, 2000, 『신편한국사 22권. 조선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국사편찬위원회, 2002, 『신편한국사 27권. 조선초기의 문화 2』
  • 민승기, 2005,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 박종경, 강신엽 역주, 1995, 『조선의 무기2. 융원필비』, 봉명
  • 육군사관학교군사박물관, 1969, 『한국화기발달사 상』
  • 한효순 저, 유재성 역, 2011, 『신기비결』,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허선도, 1994, 『朝鮮時代 火藥兵器史 硏究』, 一潮閣

논문

  • 강성문, 2002,「朝鮮의 歷代 火車에 관한 硏究」, 『학예지』 9집
  • 강신엽 역, 2003, 「훈국신조기계도설(번역문)」, 『학예지 제10집』, 육군박물관
  • 손선관(孫仙官) 외 2인, 1979, 「火藥技術 發展의 史的考察에 관한 硏究」, 『論文集』, 단국대학교
  • 유승우, 1996, 「조선후기 총포류 연구」, 『군사』33
  • 이강칠, 2002, 「한국의 화약병기」, 『학예지』제9집
  • 최형국, 2012,「19세기 화약무기 발달과 기병의 변화」, 『군사』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