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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나라를 지키는 뛰어난 무기로, 나아가 심신 수련의 문화로 자리해 온 활!
우리 활의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우수하고 독창적인 우리 활과 화살_각궁과 편전

활은 우리 역사에서 예로부터 널리 사용되었는데요, 발굴된 유물로 보아 이미 선사시대부터 활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기록을 보면, 고조선과 부여, 동예, 옥저 그리고 삼한 등에서도 활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활을 잘 쏘는 만큼 활을 잘 만드는 것으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크기에 따라, 재료에 따라 활의 이름도, 용도도 달라지는데요, 그중 대표적인 활이 바로, 물소뿔을 더해 만든 각궁입니다. 평소 이렇게 동그란 모양으로 있는 각궁은 아래와 같이 시위를 얹어서 사용하는데요, 시위를 얹기 위해서는 각궁의 안과 밖을 뒤집듯이 하므로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활이 부러지지 않는 이유는 각궁의 탄성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탄성이 높을수록 활은 많이 휘고 화살은 그만큼 멀리 날아갑니다.
1m 남짓한 각궁의 사거리는 150m에서 최대 300m라고 합니다. 정말 위력적인 무기였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각궁의 뛰어난 탄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탄성의 비밀은 이 재료들에 있습니다. 먼저 가공한 대나무와 뽕나무를 잘 이어 붙이고 그 위에 얇게 잘라낸 물소뿔을 붙입니다. 그리고 반대쪽에 가닥가닥 나눠 둔 쇠심줄을 붙입니다.

“시위를 거는 부분하고 몸체 부분하고 탄력이 전부다 부분마다 달라요. 합쳐서 연결돼서 전체 힘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죠.”

권영학 궁장 /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각궁의 탄성을 만드는데 중요한 또 하나의 재료가 민어 부레풀입니다. 잘 말린 민어 부레를 끓여 만든 천연 접착제죠. 민어 부레풀이 재료들을 강하게 접착시키면서도 활이 휠 때 유연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각궁의 탄성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높은 과학적 지식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우리의 뛰어난 활, 각궁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활이 무기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위력적인 화살이 필요하겠죠?

불화살인 화전, 촉이 작은 연습용 화살 유엽전, 격서를 보낼 때 쓴 세전, 실을 묶어 쓰는 주살과 무거운 화살촉을 단 장전, 그리고 전쟁 시, 공격 신호로 사용한 효시가 있습니다.

또 끝이 뭉툭한 박두와 무촉전이라는 화살도 있습니다. 육량전은 무과에서 쓰인 화살인데요, 무거운 화살을 얼마나 멀리 보내는지를 시험하였습니다. 이런 전통 화살 중엔 아주 특별한 화살이 있는데요, 바로 애기살로 불린, 편전입니다.

“이건 유엽전이라고 하는 일반 크기의 화살이고요, 이건 편전이라는 작은 화살입니다. 이 만큼 밖에 못 당겨 쏩니다. 이러면 사거리가 아주 짧아질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속이 비어있는 통 속에 넣어서, 이 ‘통아’ 속에 넣어서 발사하게 돼 있죠.”

유세현 /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시장(矢匠) 전수교육조교

통아 속에 넣고 쏘는 편전은 우리나라 대표 화살인데요, 크기는 작지만 무기로서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편전은 다른 화살보다 직진성이 좋고 더 빨리, 더 멀리 날아가는데요.

기록에 의하면 1,000보 이상 날아간다고 합니다. 통아에 넣어서 쏘는 위력적인 화살인 편전! 세종 때에는 이 비밀이 새 나가지 않도록 북쪽 국경에서는 편전 쏘기 교육을 금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표 무기였던 활과 화살, 그 속에는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무예와 수양의 유산 - 활의 활용과 가치

우리의 대표 무기인 활!
먼 거리를 날아가 적을 제압하는 것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산지가 험하고 전략적으로 산성이 많은 국가이기 때문에 활이 중요한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김재범 학예사 / 육군박물관

특히 조선시대 무과에서는 기사, 기창, 마상편곤과 마상무예, 그리고 다양한 활쏘기로 실력을 겨뤘는데요. 그만큼 무기로서의 활의 위상이 높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에 다양한 화약무기가 개발되고 임진왜란을 겪으며 조총이라는 신무기가 등장했지만 그럼에도 조선 후기까지 활은 여전히 비중 높은 무기로 자리하며 오래도록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또한 활은 전장의 무기이자, 동시에 몸과 마음을 닦는 수련 도구로 활용되었는데요, 특히 조선은 문무겸전을 이상적인 덕목으로 여기며 문신에게도 활쏘기를 강조하였습니다.

항상 활쏘기, 말달리기를 일삼고, 겸하여 유학 지식을 익히는 자가 상품(上品)의 인물이다.

- 『병장설』

이런 전통으로 활쏘기는 무기로써 다루는 무예를 넘어 스스로를 다스리는 수양의 도구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활쏘기는 신체 단련을 위한 무예였습니다. 그러나 선비들도 인격 함양을 위해 활쏘기를 즐겼습니다. 활쏘기는 신체와 정신, 모두를 수련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장동열 사범 / 황학정

무예와 수양 등 많은 의미가 담긴 활과 활쏘기!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각궁은 물소뿔, 쇠심줄, 대나무, 뽕나무, 참나무, 민어 부레 등으로 만든 성능이 뛰어난 활이다.
2. 애기살로도 불리는 편전은 작지만 대단한 위력을 가진 화살이다.
3. 조선시대 무과에서는 기본적으로 활쏘기 실력을 시험하였다.

해설

활은 나무를 비롯한 유연성이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그 위에 시위 혹은 현이라고 하는 직물 끈을 좌우에 고정하여 화살을 쏠 때 사용하는 무기이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가장 오랫동안 전쟁에 활용된 무기로 우리나라는 석기시대의 돌촉을 이용한 화살이 출토될 정도로 원시사회부터 가장 널리 활용한 무기이다. 특히 산성 중심의 방어전술이 조선시대까지 일반화되었기에 활은 원거리의 적을 공격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로 활용되었다.

활은 시위를 고정한 후 당겨진 형태에 따라 직선형의 직궁(直弓)과 휨이 큰 만궁(彎弓)으로 구분되며, 활을 구성하는 재료에 따라 나무로 만들면 목궁(木弓), 대나무로 만들면 죽궁(竹弓), 철로 만들면 철궁(鐵弓), 짐승의 뿔이 주를 이루면 각궁(角弓) 등으로 구분한다. 또한 활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한 가지 재질로 만들면 단일궁 혹은 구조가 단순하다고 하여 단순궁으로 부르기도 하며, 두 가지 이상의 동일한 재질로 만들면 합성궁, 나무와 섬유 혹은 뿔 등을 이용하며 만들면 복합궁으로 구분한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우리민족은 각궁이라고 하여 활의 핵심부에 무소의 뿔을 이용하여 활을 재작하였으며, 활을 가득 당겼을 때 그 휨이 커서 복합궁, 만궁의 속하는 활을 사용하였다. 각궁은 그 크기에 따라 짧으면 후궁(帿弓)과 길면 장궁(長弓)으로 구분하는데, ‘후궁’은 문자로 쓸 때에는 한자 표기에 의해 ‘후궁’라고 쓰지만, 읽을 때에는 ‘휘궁’으로 읽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장궁은 뿔의 길이가 길어 활의 좌우 끝부분인 ‘도고자’까지 덧대는 것이고, 휘궁은 뿔이 짧아 활의 중간 휘어지는 부분인 ‘삼삼이’까지만 덧대고 나머지는 뽕나무를 덧댄 활을 말한다.

또한 향각궁(鄕角弓)과 흑각궁(黑角弓)으로 구분되는 것 역시 향각궁은 우리나라 황소 뿔을 덧대 만들어 뿔이 짧아 주로 휘궁으로 분류되었고, 베트남을 비롯한 따뜻한 지역에 서식하는 물소의 큰 검은색 뿔을 이용하여 만든 흑각궁은 주로 장궁으로 불렸다. 그런데 향각궁의 경우 뿔이 짧아 세 조각을 연결하여 활에 덧붙였다고 하여 ‘삼각궁(三角弓)’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현재는 개량궁이라고 하여 주로 낚싯대에 사용하는 함성섬유를 이용한 카본재질을 활용하여 활을 만들기도 한다. 역시 화살의 경우도 직진성을 높이기 위해 꿩 깃털을 이용하여 세 개의 깃을 사용하는데, 현재는 고무소재를 활용하고 화살의 몸체 역시 대나무가 아닌 카본소재를 가공하여 활용한다.

이처럼 각궁의 서로 다른 재질인 대나무, 산뽕나무와 소뿔을 결합시켜 만들다 보니 이를 완벽하게 접착시킬 보조재료가 있어야 하는데, 전통시대에는 물고기인 민어(民魚)의 공기주머니인 부레를 활용하였다. 민어 부레를 햇빛에 잘 말려두었다가 여러 개를 모아 함께 끓인 다음 천천히 식히면 부레풀 또는 어교(魚膠)라 불리는 접착제가 만들어진다. 이 부레풀을 이용하여 소의 뿔과 나무를 결합시키는데, 활을 가득 당겨도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접착력이 있기에 각궁의 세기를 유지할 수 있다. 전 세계의 모든 활 중 가장 작지만, 가장 먼 사정거리를 갖는 강력한 우리민족의 각궁의 비밀은 바로 소뿔과 함께 사용한 부레풀에 있다.

또한 단순하게 잘 휘어지는 대나무나 나무를 이용하여 양 끝에 직물로 된 시위를 걸어 만든 목궁이나 죽궁은 각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였기에 지방군에서는 각궁과 함께 유사시 방어를 위하여 다양한 목궁과 죽궁을 만들어 활용하기도 하였다. 전쟁시 활의 세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활의 몸체를 철로 만든 철궁(鐵弓)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전통시대 활이 다양한 형태인 것처럼 화살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화살은 크게 몸체인 화살대와 적을 살상하는 부위인 화살촉, 그리고 발사 후 안정적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화살 끝에 붙이는 깃, 시위를 끼우는 오늬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시대 화살대는 주로 가볍고 곧은 나무인 싸리나무나 대나무를 잘 말렸다가 사용하였다. 지역에 따라 얇고 곧은 나무가 없을 경우에는 두터운 나무를 켜서 얇게 가공하여 목시(木矢)의 형태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적을 살상하는 화살촉 부분은 원시시대에는 돌을 날카롭게 갈거나 동물의 뼈를 재가공하여 사용하였다.

대표적으로 돌로 만든 촉은 석촉(石鏃)이라고 하여 깨뜨렸을 때 촉으로 가공하기 쉽게 부서지는 돌인 흑요석, 판석, 벽옥제석이 활용되었으며, 그 형태가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동물의 뼈로 만든 촉은 골촉(骨鏃)이라 하여 짐승의 뼈나 뿔 혹은 이빨을 가공하여 사용하였다. 청동기와 철기시대에는 청동합금이나 철을 재련하여 날카롭게 벼린 다음 화살대에 부착시켜 활용하였다.

그리고 깃 부분은 비행시 안정적인 움직임을 위하여 보통 새의 깃털 3개를 부착하였다. 또한 화살이 크거나 특수한 목적에 사용할 경우 반백조우(半白雕羽)라고 하여 독수리의 깃털을 비롯하여 맹금류의 큰 깃을 화살대에 부착시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무관(武官)을 공식적으로 뽑기 위하여 문과시험과 함께 무과시험을 보았다. 이때 보사(步射)라고 하여 보병이 익히는 활쏘기 시험을 실기과목으로 보았는데, 조선을 대표하는 화살이자 무예의 명칭으로 활용되었다.

무과시험 보병 실기 과목에는 목전(木箭-나무화살 쏘기), 철전(鐵箭-쇠화살 쏘기), 편전(片箭-애기살 쏘기) 등 모두 세 가지 과목을 시험 보았다. 이후 기병용 시험이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기사(騎射)와 말을 달리며 창을 휘두르는 기창(騎槍), 마지막으로 말을 달리며 장시(杖矢)라는 도구로 작은 둥근 공을 다루는 격구(擊毬) 등이 실기시험으로 채택되었다.

그 중 목전은 ‘박두전(樸頭箭)’이라고도 불렸으며, 대부분 화살은 화살촉을 쇠로 만드는데, 목전은 나무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나무를 둥글게 깎아 만들어 화살대에 꽂아 만든 화살촉은 끝이 뭉툭하다. 얼마나 화살을 멀리 보내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철전은 ‘육량전(六兩箭)’이라고도 불리며, 화살촉이 목전처럼 둥글지만 쇠뭉치를 달아 매우 무겁다. 화살대 역시 보통 화살보다 몇 배는 두껍고 무겁다.

편전은 화살이 아주 짧고 가벼워 ‘애기살’ 혹은 ‘동자전(童子箭)’이라고 부른다. 편전은 길이가 짧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보조 발사 기구 ‘통아’에 넣은 뒤 쏘아야 한다. 화살을 쐈을 때, 안정적인 궤도를 그리면서도 멀리 나가는데다 나아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목표물을 꿰뚫는 힘이 매우 크다. 또한 보통 화살과 견주어 봤을 때, 길이가 3분의 1 정도로 짧아 공격할 때도 적군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속도가 빨라 화살을 막거나 피하기도 어려웠으며, 다른 화살처럼 다시 주워 쓸 수도 없었다. 편전은 그야말로 조선만의 비밀 병기였던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에 여진족이나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는 변경지역에는 편전의 사용법이 외국으로 빠져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비책으로 묶어 조심스럽게 활용하였다.

이처럼 활과 화살은 전통시대를 대표하는 무기였다. 특히 단순히 무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예(六藝) 중 하나로 들어갈 정도로 정신수양에도 도움을 준 무기이자 마음 단련의 도구였다. 지금도 전국의 활터에서는 쉼없이 전통시대의 심신단련법으로 활쏘기가 행해지고 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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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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