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3장 한국인이 배우고 개발한 과학 기술

3. 한글의 기계화

[필자] 김태호

한글은 세계의 문자 가운데 그것을 완성한 사람과 공표한 날짜가 정확히 알려져 있는 거의 유일한 문자이다. 국가 권력이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어 그것을 일반 민중들에게 보급한 것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글자의 생김새도 형이상학적 원리에 바탕을 두고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한글의 이러한 특징은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민족주의에 대한 자각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우리의 민족성을 지켜내는 한 방편으로 한글과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한글이 과학적으로 우수한 문자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고자 하였다. 당시 새롭게 보급되던 인쇄기나 타자기와 같은 기계에 한글을 접목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급격한 기계화의 물결을 놓치지 않아야 한글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을 기계화한다.’는 과제는 생각처럼 쉽게 달성할 수 없었다. 언어학자·기술자·사용자 모두가 두루 만족할 정도의 한글 기계화가 이루어진 것은 개화기로부터 무려 한 세기 남짓 흐른 뒤였다. 고작 스물네 개의 한글 자모를 기계에 싣는 데 어째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언 어학자·기술자·사용자가 바랐던 한글 기계화의 모습은 서로 어떻게 달랐을까? 그들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조정되었을까? 요컨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 기계’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태어난 것일까?

[필자]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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