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정재의 전개 양상
[필자]
사진실

고려시대의 음악과 정재에는 통일신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당악과 향악 외에 송나라의 대성아악(大成雅樂)에서 유래된 아악 그리고 고취악과 기악(伎樂)이라는 새로운 갈래가 등장하였다. 이 가운데 정재와 관련 있는 당악과 향악의 개념은 이전 시대보다 확대되었다. 향악 정재에는 신라 때의 삼현삼죽(三絃三竹) 외에 아박(牙拍)·무고(舞鼓)·해금·피리 등 다양한 향악기가 동원되었고, 여기에 정재의 향유층이었던 고려 귀족 사회가 정재에 끼친 영향도 상당하였다. 당악 정재 또한 기존의 것 외에 송나라에서 전래된 정재와 악기의 영향으로 더욱 다양해져서 송나라의 교방악과 사악이 중심이 된 새로운 ‘당악’의 개념이 정립되었다.80)
고려시대에 음악이나 정재를 담당하였던 왕립 기관은 대악서(大樂署), 관현방(管絃房), 아악서(雅樂署)다. 대악서는 음악 행정을 담당했던 기관이고, 관현방은 1076년(문종 30)부터 1391년(공양왕 3)까지 존속하였던 기관으로, 전문 악사와 악공 그리고 여기(女妓)의 연습과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아악서는 1391년(공양왕 3)에 종묘 제례 의식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
다. 그러나 이들 기관보다도 고려시대의 궁정 정재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송나라의 사악과 교방악으로, 고려는 교방을 통해 이를 자주적으로 수용하여 독자적인 궁중 정재와 음악 문화를 발전시켰다.
[필자]
사진실
80) | 송방송,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한국사』 21, 국사편찬위원회, 1996, 45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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