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가 주관하는 행사, 친잠례
왕비가 주관하는 행사인 친잠례(親蠶禮)에는 직접적인 제례 의식과 친잠례 후 왕비가 직접 주관하여 베푸는 연회인 내연(內宴)이 있다. 왕이 직접 제례 의식을 관장하며 국정을 보살피면서 한편으로 직접 농사를 권장하는 의식인 친경례(親耕禮)를 거행했다면 왕비는 직조(織造)를 장려하는 의미로
누에를 치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인 친잠례를 거행하였다. 친경례는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모범을 보여 백성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널리 농업을 권장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며, 친잠례는 노동의 상징인 길쌈을 권장하는 의미에서 왕비가 친히 뽕잎 따기, 누에치기, 길쌈의 시범을 보이는 의식이다. 이와 같은 행사에 참여하기에 앞서 먼저 선잠에 제사를 올린다. 선잠단(先蠶壇)의 제사는 종묘와 사직의 제사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긴 중사(中祀)였다.
왕비가 내전을 떠나 친잠하는 장소로 이동할 때는 왕의 이동과 마찬가지로 왕비의 인장과 의장대, 악대가 함께 움직인다. 왕비는 친잠복인 국의(鞠衣·菊衣)를 입고 제례 의식에 참여하였고, 제사 후에는 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뽕잎을 따서 누에에게 뿌려 주는 행사를 갖는다. 의식 후에는 친잠례에 참여한 왕세자빈과 내·외명부의 수고를 치하하는 연회를 베푸는데 이때는 모두 예복인 원삼으로 갈아입는다.
중국의 친잠복은 주대(周代)에 황색이었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색을 사용하였으며 명대 이후는 주로 홍색이었다. 조선시대 때 친잠례에 입는 국의는 단삼, 노의, 장삼과 더불어 왕비의 상복(常服)으로 1481년(성종 12)에 거행된 친잠례에서 그 제도를 정비하였다. 즉, 그해 정월 계비 윤씨가 왕의 친경례에 따라 친잠을 후원에서 행하고 국의를 뽕나무의 색을 본따 황색으로 염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황색은 황제의 색이므로 금지의 색이라는 논란이 있었으나 상색(桑色)이니 무관하다 하여 그대로 사용하였다.168) 초기에는 누에의 노란빛이 나는 상색을 입었지만 복색이나 제도의 시행이 일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지며 후에
는 원삼으로 대체되었다. 행사 때 왕비를 수행하는 내명부는 왕비와 구별하기 위해 아청색의 포를 입었으며 모두 흉배를 달았다. 왕비는 쌍봉문의 흉배를 달았다. 친잠례 의식을 기록한 회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실제의 행사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일본 귀부인이 한말 순종 황제 때에 행사에 참석한 윤비 및 내·외명부를 찍은 기념 사진이 남아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옷차림이 많이 약식화되어 친잠례에 윤비가 당의를 입고 있는 것은 물론 내·외명부도 당의를 입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윤비와 의친왕비, 흥친왕비는 직금으로 무늬가 장식된 당의 차림이고 나머지는 무늬가 없는 당의 차림이다.
| 168) | 『성종실록』 권25, 성종 12년 1월 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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