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상징과 의미가 가득한 의례복

1. 무병장수와 부귀권세를 기원하는 돌빔

[필자] 이은주

아침부터 홍 참판 댁은 떡을 장만하느라 분주하였다. 오늘이 홍 참판의 손자 첫돌이란다. 드디어 안채 대청에는 굴레에 색동옷을 곱게 차려입은 주인공 돌쟁이가 중앙에 자리하고 그 앞에 조촐한 돌상이 마련되었다. 수수경단 그릇이 가지런히 올려지고 떡 좌우에는 책 한 권과 활, 화살이 정성스레 놓여 있다. 돌잡이를 할 참이다. 할아버지 홍 참판과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유모에 둘러싸인 아기가 뭔가를 집으려고 한다. 아기는 과연 무엇을 집을까? 책일까? 활일까? 마당의 어린 돌쇠와 돌쇠 어멈, 또 다른 식솔들까지 모두 숨죽이고 아기의 손을 응시한다. 책에 마음이 가는 듯 아가는 책을 향해 오른손을 뻗는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평생도병(平生圖屛)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첫 돌잡이 모습은 이러했을 것이다. 요즈음 첫돌 잔치는 호텔의 뷔페로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 유행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잡이는 까치두루마기에 전복을 입고 머리에 복건을 썼건만 이제는 턱시도나 드레스를 입는다고 하니, 언제 다시 우리 아기들에게서 고운 우리 옷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조선시대에는 첫돌을 초도(初度)라고 하였다. 그리고 돌잔치를 ‘초도호연(初度弧宴)’이라고 했듯이 첫돌 상에는 떡과 함께 활과 화살, 그리고 책 등을 놓았다. 장수를 의미하는 실타래나 국수를 올려놓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렇듯 첫돌 의례는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복을 누리며 출세하여 편안히 살아 주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염원에서 이루어졌다.

<돌상 받은 아이와 가족>   
고려대학교 소장 평생도병 중 초도호연(初度弧宴) 부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유모, 그리고 식솔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상을 받은 아이는 굴레를 쓰고 색동저고리에 바지를 입고 붉은 배자를 착용하고 있다. 허리에는 오곡을 담은 염낭을 늘어뜨린 돌띠를 매어 주어 무병장수와 과거 급제, 그리고 평탄한 삶을 기원하고 있다.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옛날에는 아이의 첫돌이 성장의 초기 과정에서 한 고비를 넘겼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170) 앞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판단되었기에 축하연을 했던 것이다. 탄생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이 단명했던 그 당시로서는 출생 후 1년간 건강하게 살아남은 아기가 있다는 것은 아기 본인에게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 큰 기쁨이었다. 그런 의례인 만큼 무병장수와 오복을 기원하는 뭔가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옷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알아보자.

[필자] 이은주
170)조희진, 「첫돌 복식의 착용 양상과 통과의례적 의미」,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2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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