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명절 음식 , 그 넉넉함의 향연

4. 수레바퀴 모양의 쑥절편, 단오 수리취떡

[필자] 이정기

옛사람들은 달과 날에 양수가 겹쳐 있는 때를 명절로 삼아 즐겼다. 단오도 양수 5가 겹쳐 있으므로 길일로 여기는데, 특히 단오는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고 한다. 단오(端午)의 단(端)은 처음, 첫 번째라는 뜻이고 오(午)는 십이지 중 일곱 번째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음력의 역월(曆月)은 중국 하(夏)나라에서 인월(寅月)을 1월로 삼았던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묘월(卯月)이 2월, 진월(辰月)이 3월, 사월(巳月)이 4월, 오월(午月)이 5월에 해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단오를 중오(重午), 중오(重五)라고 하며 우리말로 수릿날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단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신라에서 5월 5일에 오묘(五廟)에 제사를 지냈다거나 가야에서 단오에 수로왕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 정도이다. 그런데 단오에 관한 기록은 아니지만 일찍이 마한에서는 해마다 5월에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 지내고, 밤낮으로 술자리를 베풀어 무리 지어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춤출 때에는 수십 명이 줄을 지어 땅을 밟으며 장단을 맞추어 즐겼다고 한다.217) 백제에서도 5월에 천신과 오방신, 시조 국태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5월에 국가 차원에서 여러 행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단오에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주었고, 이날을 속절로 삼아 왕이 친히 경령전을 배알하고 제사를 지냈다. 경령전은 연경궁 내에 있던 전각으로, 태조와 사조(四祖)의 어진 및 신위를 봉안한 진전이다. 일반 백성들도 이날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신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낸 후에는 잔치를 베풀어 단오시를 짓거나 각종 물품을 신하들에게 내려 주었는데, 이를 단오선사(端午宣賜)라고 하였다. 이날에도 고운 옷(단오빔)과 좋은 음식을 준비하여 여럿이 모여 먹고 즐겼으므로 설날의 풍성함과 견줄 만하다.

[필자] 이정기
217)『후한서(後漢書)』 권85, 동이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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