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5장 천년을 함께한 차

3. 유교 문화와 차

[필자] 김지원

파초가 우거진 마당, 오른쪽의 동자가 차를 화로에 올려놓고 끓이고 있다. 까만 숯을 넣은 질화로에 쇠다관을 올려놓고 부채질을 계속하며 불을 피우고 있다. 차 끓이는 심부름을 하는 동자를 다동(茶童)이라고 한다. 다동의 머리는 조선시대 어린아이들의 일반적인 두발 형태인 더벅머리인데, 동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정수리에 작은 상투를 틀고 있다. 화로 왼쪽에 있는 긴 상 위에는 줄 없는 거문고, 족자, 책, 벼루 그리고 붉은 다반 위에 찻잔 세 개가 놓여 있다. 가운데 시원하게 뻗어 오른 파초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좋아하던 나무로, 잎이 아름다워서 예로부터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파초의 넓은 잎이 만들어 낸 왼쪽 그늘 아래 뿔이 다 자란 큰 사슴이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다. 사슴 때문에 깊은 산 속이거나 아니면 신선의 세계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림 중앙 위쪽에 ‘차를 맛보다’라는 뜻의 화제(畵題) ‘시명(試茗)’이 보인다. 차를 마시며 차의 맛과 색 그리고 향을 평하고, 아울러 시와 글씨 그리고 자연을 즐겼던 모임, 다회(茶會)·시회(詩會)·아회(雅會)와 같은 모임을 뜻한다. 화제 옆에 단원(檀園)이라는 관서가 있고, ‘김홍도’라는 빨간 도장도 찍혀 있어 풍속화로 유명한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의 작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시명>   
‘시명(試茗)’은 ‘차를 맛보다’라는 뜻으로, 다회·시회·아회와 같은 모임을 의미한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그림이다. 백자 찻잔 외에 다른 다구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차는 물에 넣어 끓여 마시는 잎차나 떡차로 보인다.

자세히 보면 조선 후기 그림답게 상 위에 놓인 찻잔이 백자이다. 그런데 백자 찻잔이 참으로 소박하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형태도 단순하다. 청자 찻잔에 격식을 차리면서 차를 마시던 고려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비교되어 떠오른다. 화려한 고려시대의 차 문화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림 속에는 소박하다 못해 투박해 보이는 찻잔과 역시 찻잔처럼 투박한 더벅머리 다동만 있을 뿐이다. 찻잔 외에 다른 다구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차는 물에 넣어 끓여 마시는 잎차나 떡차인 듯하다. 질화로 위의 다관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서서히 차향이 퍼진다. 산 속에서 격식을 차리지 않고 모든 것을 잊고 산, 물, 바위, 나무를 벗 삼아 차 마시는 멋도 꽤 좋을 것이다. 책을 읽고 글씨를 쓰고, 거문고를 연주하던 이들은 차 맛뿐 아니라 차 마시는 분위기까지 즐겼던 것 같다. 이 같은 멋을 즐겼던 사람은 누구일까?

[필자]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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