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6장 동아시아의 명품, 우리 모피와 말4. 말의 기원과 변천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말을 이용하였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록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말은 이미 존재하였다. 그래서 말과 인간 생활에 관한 초기의 역사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결과를 가지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말 및 마속(馬屬)에 속하는 여러 가지 말의 뼈는 상원 검은모루 동굴 같은 중기 구석기시대 유적층 가운데에서 이미 발견되고 있어 구석기시대 말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신석기시대 유적층 가운데 말 뼈에 대한 몇몇 보고도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말이 존재하기 시작한 시기는 구석기시대부터일 것이다.

말을 가축으로 사육하고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지만 본격적인 사육은 청동기시대부터이다. 이는 청동기시대 유 적에서 나오는 마구(馬具) 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데 기원전 1800년경 바빌론 유적에서 마구들이 발굴되었다. 기수가 의도한 대로 말을 부리기 위한 재갈이나 고삐, 마면주(馬面胄) 등은 기원전 8∼3세기 무렵 스키타이 유적에서 나타나며, 몽고말은 기원전 5000∼6000년 무렵부터 가축화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말이 생활에 쓰이는 용도와 범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대되어 갔다.

<말 모양 장식품>   
기원전 1세기경에 청동으로 만든 말 모양 허리띠 고리이다. 고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 모양을 장식 문양으로 많이 사용할 정도로 말과 친숙하였고, 말을 큰 인물의 탄생이나 기쁜 소식을 알리고 천상계와 연결할 수 있는 동물로 여기는 등 상서로운 존재로 간주하였다.
<말 모양 장식품>   
기원 전후에 두 쌍의 말을 조각하여 만든 칼 손잡이 장식(銅製馬形劍把頭飾)이다.
<말 모양 장식품>   
원전 1세기경에 청동으로 만든 청동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말의 사육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위만 조선의 우거(右渠)가 한 무제(漢武帝)와 전쟁을 할 때 말 5,000필과 군량미를 내줌으로써 화친을 맺으려 하였다는 기사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우거가 5,000필의 말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에 말을 대량으로 사육하였음을 반영한다.

[필자] 윤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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