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6장 유교적 사유 양식의 고수와 근대적 전환

5. 새로운 유교 사유와 유교 문화의 창신

[필자] 권오영

19세기에 유학자들은 성리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유교적 삶과 사유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송대 이후 심성(心性)과 이기(理氣)의 해명에 매몰되어 온 구덩이에서 탈출을 시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미 17세기에 윤휴와 박세당 등은 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제출하기도 하였지만 이들은 송시열 등 주자학자에 의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낙인이 찍혀 학계에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양명학을 연구한 일부 소론 학자나 서학을 수용한 근기(近畿)의 일부 남인 실학자, 그리고 청나라의 연경(燕京)을 다녀온 북학파 실학자에 의해 성리학 이론에 대한 실용적 해석이 이루어지면서 서학의 영향을 받아 성리학은 점차 해체의 길을 걷고 있었다.

특히 육경 사서(六經四書)를 깊이 탐구하고 자기 시대까지의 경전 주석을 두루 연구한 정약용은 심성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그는 심을 이기가 합해 있다거나 기로 보거나 이로 보지 않았고, 심에는 혈육(血肉)의 심, 영명(靈明)의 심 등이 있다고 하였다. 또 심에는 곧은(直) 성(性)이 있을 뿐이라고 하면서 곧은 성을 실천하는 것이 덕(德)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정약용의 새로운 견해는 『대학』의 명덕(明德)에 대한 이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는 덕(德)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덕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심(直心)을 행하는 것(彳)’이 덕이라고 하였다. 그는 『주례(周禮)』 「대사악(大司樂)」의 근거를 제시하며 ‘효우(孝友)’가 『대학』의 핵심 내용이라 하면서 명덕을 ‘효제자(孝悌慈)’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삼강령(三綱領)의 하나인 명덕(明德)을, 팔조목(八條目)의 마지막인 평천하(平天下)의 범위 속에 넣어 이해하여 덕을 밝히는 것은 효제를 천하에 밝히는 것이고, 그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비근한 예로 성균관과 향교에 명륜당(明倫堂)이 있는데 명륜(明倫)이 바로 효제를 밝히는 일이라고 하면서 주자의 형이상학적인 명덕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약용 초상>   
육경사서(六經四書)를 깊이 탐구하고 경전 주석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겨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性)은 행사(行事)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견해는 성리학을 극복하고 새로운 유학의 태동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정약용은 성을 기호(嗜好)라고 하면서 성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덕(四德)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측은(惻隱)한 마음, 수오(羞惡)의 마음, 사양(辭讓)의 마음, 시비(是非)의 마음 등이 있고 인의예지는 마음 밖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의 성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성은 행사(行事)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행사를 매우 강조하고 인의예지를 행사에서 구하고 있는 그의 견해는 분명 성리학을 극복하고 근대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유교의 태동을 제시한 것이다. 정약용의 이러한 견해는 최한기에게 오면 서양 고대·중세 철학이 가미되어 인식론(認識論)에 있어 조선 유학계에서는 매우 참신한 유학의 이론으로 정립되었다.

[필자] 권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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