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조선 시찰단이 일본에서 맛본 근대2. 근대 국가의 표상으로서의 일본

조사 시찰단의 일본 보고서, 문견사건

조사들은 메이지 일본의 현황 전반을 파악, 보고할 임무 이외에 일본 조정 내 각 성과 세관의 운영 상황, 육군의 조련 등에 관한 것 가운데 한 가지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고할 특수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귀국 후에 일본의 현황 전반과 특수 임무에 관한 결과 보고서인 문견사건류(聞見事件類)와 시찰기류(視察記類)를 작성하여 복명할 때 고종에게 올렸다.

문견사건류에 속하는 보고서는 조사들의 공식 직함이 동래 암행어사이자 일종의 견외 사절(遣外使節)이었기 때문에 작성한 것이었다. 조사들은 암행어사, 통신사(通信使), 연행사(燕行使)의 상례(常例)를 따라 고종이 봉서(封書)에 지시한 일본의 현황 전반에 관해 조사한 결과를 서계(書啓) 형식의 ‘문견사건’이라는 제하(題下)의 보고서로 작성하여 고종에게 올렸던 것이다.

현재 강문형, 이헌영, 민종묵, 엄세영, 박정양, 조준영, 심상학, 어윤중 등이 남긴 문견사건류의 보고서를 찾아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어윤중은 이 례적으로 다른 조사들과 형식이 다른 『재정견문(財政見聞)』이라는 보고서를 남겼다. 이 보고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1881년까지 일본 조정이 국내 반란 세력을 진압하면서 추진한 부국강병책의 결과를 세입 세출, 지폐, 국채, 조세, 은행, 정부 재산, 실적 등 7장으로 분류한 다음 분석·평가한 것으로, 문제 제기-입론-결론 등의 ‘근대적’ 논문 서술 방식에 따라 썼다. 또 각종 통계 자료를 이용한 점에서 조선 최초의 일본 경제 분석서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일본의 전반적인 실정에 관해 보고하기보다 경제와 재정 문제에 집중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조선의 세입(稅入)은 1800년대 초의 10분의 1에 그칠 정도로 재정 형편이 무척 어려웠다. 위정자들은 일본이 단행한 경제 제도 개혁과 산업 진흥 정책이 어떠한 결실을 거두었고, 국가 재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관심이 컸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귀국한 조사들은 대개 일본이 부국강병책을 펴다 재정이 파탄 났다는 보고를 올려 조선이 이를 모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인 바 있었다. 따라서 어윤중은 일본의 재정 형편이 파탄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여, 조선도 부국강병책을 택해야 함을 설파할 목적으로 이 보고서를 고종에게 올렸다.

강문형의 『문견사건』은 일본의 내정 전반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문건에는 일본의 군제, 관제, 경찰 제도, 우편, 경축일, 도량형, 조폐 등 제도를 비롯해 일본의 개국 과정 등 외교·통상 현황, 물산·기후 등 지리 개황, 유학의 쇠퇴 및 의식주의 서구화 등 사회상과 홋카이도(北海島) 개척, 류큐(琉球) 병합 등 영토 확장에 관해 입수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다.

민종묵은 『문견사건』에 각국의 정체(政體)와 일본 내 자유 민권(自由民權) 운동에 대해 기술하였다. 또한 군제, 전신, 우편, 교육 등 여러 가지 제도와 지조 개정(地租改正), 무역 동향, 국채, 조세 제도 등 경제 상황과 수륜(水輪), 화륜(火輪)을 이용한 공장 설립 등 산업 진흥 정책, 그리고 러시아와의 국경 분쟁, 정한론(征韓論), 타이완(臺灣) 정벌 등 대외 진출과 병원, 맹아원, 고아원 등 사회 복지 시설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문견사건류>   
조사들이 귀국 후 작성한 보고서인 여러 가지 『문견사건』이다. 조사들은 고종에게 봉서(封書)로 탐지하도록 지시를 받은 내용에 관해 일본에서 조사한 결과를 ‘문견사건’이라는 제목의 서계(書啓)로 보고하였다.

박정양의 『일본국문견조건(日本國聞見條件)』에도 그가 시찰 활동을 통해 입수한 일본의 내정 전반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실려 있다. 특히 3원(院) 10성(省)의 중앙 정치 제도를 삼권 분립(三權分立) 주의에 의거한 것으로 파악한 점, 국채의 누적 등 일본 재정 상황을 비관적으로 진단한 점, 일본의 관세(關稅) 자주권 회복 노력 등을 기술한 점 등이 돋보인다.

심상학의 『일본문견사건초(日本聞見事件草)』에는 조사 선발에서 귀국에 이르는 여정을 비롯해 일본 외무성의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 또는 미야모토 오카즈)가 제기한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한 국경 방비 강화 및 농업 진흥 위주의 부국책(富國策) 채택 등에 관한 권유가 실려 있다.

엄세영의 『문견사건』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주목할 것은 사법성 사무 전반에 관한 것이다. 삼권 분립에 따른 사법권의 독립, 행정권의 예속에서 벗어난 근대적 재판 제도, 강력한 권한을 가진 사법경(司法卿) 중심의 사법 행정 체계, 프랑스 법을 계수(繼受)한 형법 등에 대한 개관과 평가는 근대적 사법 제도를 조선 최초로 소개한 것이다.

이헌영의 『문견사건』에는 일본 내 여정을 비롯하여 자신이 담당한 세관 사무에 관한 보고가 실려 있다.

조준영의 『문견사건』에는 막부(幕府) 말기에 일본의 수구 세력과 개화 세력 간의 대립, 일본인의 공로증(恐露症), 의식주의 서구화, 근대적 공장, 경찰, 교육 제도 등 일본 실정 전반에 관해 수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문견사건』의 문건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 가 이룩한 정치, 경제, 군사, 사회, 교육 등 여러 방면의 제도 개혁을 비롯해 자유 민권 운동과 정계 내부의 갈등 등 정계의 동향, 통상·외교 관계와 대외 팽창, 관세 자주권 확보를 위한 서구와의 교섭 등 대외 사무, 물가·재정 상황과 산업 시설, 물산 등 경제 동향, 우편과 전신, 철도의 보급과 가로망의 확충 등 교통·통신 시설의 발달, 의식주의 서구화와 풍속, 종교, 신분 제도상의 변화상, 역사 및 지리적 환경 등을 포함한 일본 실정 전반에 관한 정보와 평가가 담겨 있다.

[필자] 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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