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감청자의 제작

청자의 전개 과정에서 비색의 성취와 더불어 가장 고려적인 특색을 보이는 것은 상감청자가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태토를 파내고 다른 흙을 감입함으로써 태토와 대비되는 색조의 문양을 표현하는 상감기법(중국에서는 讓嵌이라 한다)은 원래 중국 섬서성의 황보요(黃堡窯)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섬서성 요주요(耀州窯), 하북성 자주요(磁州窯)와 산서성 혼원요(渾源窯) 등지에서 시도된 상감기법은 주로 중국 북방계 가마에서 볼 수 있는 도자 표현기법 중 하나였으나106) 그리 흔한 기법은 아니었다.
고려의 경우 상감기법은 청자 발생 초기 단계인 10세기 경에 중서부 지역의 전축요계 가마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선상감 위주의 당초문과 같은 문양들을 묘사한 상감기법은, 특히 장고와 같은 악기에 집중되고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기종에 선별적으로 시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려청자가 중국 남방의 월주요에서 영향을 받아 개시된 상황에서 북방계의 상감기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북방에서도 기법의 일부가 함께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예가 된다.107)
청자 제작 초기 단계부터 소량 시도된 상감기법은 12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점차 비율이 증가하며 고급 청자를 묘사하는 방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1159년에 세상을 떠난 문인인 문공유(文公裕)묘 출토 청자상감보상당초문완은 보상화 당초를 역상감기법으로 새김으로써 고려 중기의 상감수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1255년
에 수축된 명종(明宗, 1171∼1197재위)의 지릉(智陵)에서는 여러 점의 청자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청자상감여지문대접>의 경우 13세기 전, 중반의 상감기법과 표현방식을 잘 알 수 있는 기준작으로 알려져 있다.108)
이 밖에도 축조 연대를 알 수 있는 많은 왕릉에서 발견되는 상감
청자의 상당수가 대부분 13세기와 14세기에 집중되어 있어 상감기법이 고려에서 절정을 맞이한 것은 12세기 후반 이후나 되어서야 가능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상감기법에 의한 청자 생산이 강진, 부안과 같은 고급 청자 생산지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상감청자는 지방요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매우 적고 강진, 부안 지역에서도 한정된 수량만 확인된다. 결국 상감기법은 특정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도자기에 들어가는 고급 기법이었던 것이다.
상감청자는 13세기 전반부터 청자 제작의 중심의 하나로 자리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이 시기에 강진보다도 부안 일대에서 더 많은 상감청자가 제작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강진이 우수한 품질과 장구한 시간 동안 청자의 역사를 이끌어 간 상황에서 부안 지역이 갑자기 청자 제작사의 전면에 등장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우연일지 모르겠으나 1170년경 무신의 난을 정점으로 고려 사회는 일변하였으며, 부안요업도 함께 급성장한 것으로 보아 무신란 이후의 권력구도 변화가 부안의 청자요업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추측할 뿐이다.
고려청자의 독창성을 돋보이게 하는 상감문양의 의장(意匠)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공존한다. 표현방식은 문양을 마치 동양화처럼 회화적으로 표현한 계통과 디자인 풍으로 반복적인 문양을 묘사한 계통이 알려져 있으며 후자가 훨씬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상감청자에서는 문양을 배치하는 방식에서 중심 문양과 보조 문양의 구분이 뚜렷해지며 각종 동물문과 식물문, 기타 여러 문양의 조합 예들이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시문된 문양의 소재로는 국화문, 국화당초문, 모란문, 모란당초문, 보상화당초문, 여지문, 여의두문, 연판문, 연당초문, 포도문, 포도동자문, 학죽문, 운학문, 구름문, 운봉문, 용문, 앵무문, 포류수금문, 유로수금문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문양은 중심문양과 보조문양으로 구획하면서 다른 기법과 혼용하여 표현한 경우가 보인다.

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상감청자로는 13세기경 부안 지역 생산품으로 추측되는 간송미술관 소장의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다. 좁은 입구에 긴장된 어깨부와 유려한 곡선미를 보이는 이 매병에는 원권안과 밖에 구름과 학을 반복적으로 묘사하여 공예 의장적인 표현방식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상감청자의 제작 시기에는 금속이나 나전칠기와 같은 목공예품의 제작도 활발하여 이들 간에 상호 조형적 영향을 주고받았던 흔적이 보인다. 금속 표면에 홈을 파내고 금·은과 같은 재료를 두드려 감입하는 입사(入絲)기법과, 목기의 표면에 얇은 금·은판을 오려 옻칠과 함께 부착하는 평탈(平脫)기법은 재료와 명칭만 다를 뿐 적용되는 방식은 동일하다. 실제로 국보 제66호인 <청자상감포류수금문정병>은 국보 제92호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과 기형, 문양소재, 표현 방식면에서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밖에도 유사한 사례는 매우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