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5 조선 진경의 정수, 후기 백자

01. 조선, 그리고 후기 백자

[필자] 방병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엄청난 국난을 치른 조선은 경제·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하였다. 사회적으로는 신분제의 변동이 일어나 계층 간 이동이 발생하여 반상(班常)의 구분이 일부 모호해지게 되었다. 도자 장인의 경우도 전반적인 신분의식의 고양과 그릇 생산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커지면서 조정에서도 장인의 모집과 대우에서 전대와 다른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의 시행 등으로 상품 경제의 싹이 트면서 그릇의 유통도 보다 활발해졌다. 이에 따라 백자도 상품으로 인식되어 상품 가치에 따른 가격의 차등이 이루어졌다.

국초부터 백자는 성리학을 국시(國是)로 한 조선에서 지배계층인 왕실과 사대부들의 이념을 표출하는 도구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그릇의 사용에 있어서는 엄격한 제한을 두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한 여러 법전에서 구체적인 제한 조항을 두어 이를 어길 시는 국법으로 다스렸다.210) 그러나 조선 후기 들어 백자는 이념 표출의 도구뿐 아니라 장식과 신분의 과시를 위한 사치상품으로 떠올랐다.

[필자] 방병선
210) 방병선, 「법전을 통해선 본 조선시대 자기생산과 관리」,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항산안휘준교수 정년퇴임기념논문집 , 사회평론, 2006, pp.518∼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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