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총설01권 한국사의 전개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1. 선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1. 생태학적 특성
          • 1) 한반도의 위치와 지형
          • 2) 한반도의 기후
          • 3) 식생
          • 4) 동물
          • 5) 생태계
          • 6) 생물상
        • 2. 지리학적 특성
          • 3) 지형
            • (2) 하천과 평야
            • (3) 해안과 해양
          • 4) 기후
        • 3. 인류학적 특성
          • 4) 산촌과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 5) 도시인의 주거지역과 생태적 특성
      • Ⅱ. 한민족의 기원
        • 1. 고고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문화계통의 다원론적 입장-
          • 3) 문화계통
        • 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 1) 한민족·한국문화 기원론의 흐름
          • 2)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여러 양상과 그 계통
        • 3. 문헌에 보이는 한민족문화의 원류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1. 선사
        • 2. 고대
          • 1) 국가의 성립과 발전
          • 2) 통일 신라의 수취제도
        • 3. 고려
          • 1) 정치적 특성
          • 2) 경제적 특성
          • 3) 사회적 특성
          • 4) 사상적 특성
        • 4. 조선
        • 5. 근현대
          • 1) 근대적 사회변동과 자주 개혁의 시련
            • (7)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의 전개
          • 2)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독립운동
            • (1) 일제의 강점과 식민통치의 기조
            • (2) 식민통치의 시기별 특징
            • (4) 독립운동의 시기별 특징
          • 3) 해방정국과 현대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1. 언어
        • 2. 문학
        • 3. 종교와 사상
          • 5) 한국 종교사의 전개
        • 4. 과학기술 -한국 과학기술사의 시기별 특징-
          • 1) 전통과학시대
          • 2) 근대과학시대
          • 3) 현대과학시대-한국전쟁 이후
        • 5. 미술
          • 1) 선사시대 미술의 특성
          • 2) 삼국시대 미술의 특성
        • 6. 음악
          • 2) 한국음악사의 전개양상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5) 한국 농경문화의 기원-쌀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한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농경문화를 유지해왔다. 애초에 우리 선조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가, 먹을 것으로서 맨 처음 무엇을 심기 시작했는가 라는 것은 흥미로운 문제이다. 현재까지 약 300여 종의 작물을 심고 가꾸어 왔지만 그 가운데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성행하고 발달한 원인과 자연 조건이 벼농사에 알맞았는가의 여부, 어떤 경로를 통해 볍씨가 들어왔는가 등 볍씨 전래 문제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구석기시대에는 사냥, 고기잡이, 조개줍기, 초목의 채취 등으로 식량을 얻었다. 구석기시대인들은 식량을 얻는데 항상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식량의 부족이란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그 해결책으로 농경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하면 농경을 제외하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서는 환경 조건이 맞지 않아서 농경 생활은 하지 않았으나 간석기나 토기와 같은 신석기시대의 문화요소가 나타나고 정착생활을 한 지역이 있다. 이와 같이 농경은 행하지 않았으나 정착 생활을 하고 간석기를 만들어 쓴 분명한 신석기적인 요소를 보이는 곳이 한국을 포함한 일본, 시베리아지역이다. 이러한 극동아시아의 신석기시대는 농경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나름대로의 신석기문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수렵과 채집, 어로를 중심으로 한 수렵채집경제를 그대로 이어왔으며, 중요한 식물자료로서는 도토리가 주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전반에 걸쳐 농경이 행해진 것은 아니며, 신석기시대 후기에 와서 그 흔적이 나타난다. 그 예로 황해도 지탑리유적에서는 유일하게 재배곡물이라고 생각되는 식물이 나왔는데, 벼는 아니고 조나 피로 보인다. 평남 궁산리유적에서는 곡물 자체는 나오지 않았지만 돌괭이와 수확도구로 쓰였던 농경구가 쏟아져 나왔다. 이를 보면 궁산리유적과 지탑리유적을 잇는 한반도 서북부 서해안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 말기인 기원전 2000년경부터 원시 농경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반도의 신석기시대도 그 초기부터 농경을 배경으로 전개되었다는 주장을 한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한 주장은 출토 유물 중에 원시 맷돌과 돌도끼가 나온 것을 근거로, 그것들이 농경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원시 맷돌은 말안장 모양의 갈판과 갈돌이 한 조를 이룬 것으로 이런 형태의 유물은 이란과 이라크 등 서남아시아의 신석기유적에서도 출토되는데, 보리나 밀의 껍질을 까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도 그 용도가 같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을 농경의 방증 자료로 보고, 커다란 돌도끼 또한 농경에 사용된 하나의 도구로 보아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일부 있다. 이러한 주장은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신석기시대의 유물 중에서 앞서 말한 두 종류의 석기만을 예로 농경의 존재를 주장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 않은데, 신석기시대의 수많은 도구 중에서 단지 두 종류만 뽑아서 다양한 석기의 용도 중 농경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만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이는 소극적인 자료에 의한 미약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신석기시대는 수렵·채집·어로생활에 기반을 두었지만 말기에 가서 농경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농경으로의 전환은 무문토기 사용 단계인 청동기시대이며 이 때의 농경은 벼농사에 보리·조·수수 등이 병행되었을 것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한민족이 처음 식량으로 삼은 곡류는 쌀이 아니라 조·피·기장 등의 잡곡이다. 그 후 쌀이 선택되어 수도작이 시작되고 이것이 한반도 전역에 보급되어 벼농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수도작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세계의 농경지 분포를 보면 250mm 이하 되는 지대는 거의 없고, 500∼1000mm 정도의 지대면 밀과 보리가 80% 이상 재배되며, 1000∼1200mm의 비가 내리는 지대가 벼의 재배에 알맞다. 따라서 벼농사의 발상지로 생각되는 곳도 강우량이 많은 곳으로 보고 있으며 하천을 끼고 있어서 비교적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벼농사의 기원과 발생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고고학자와 농학자가 보는 견해가 조금씩 다르다. 고고학자가 보는 입장은 杭州 근처의 河姆渡 유적을 발견했더니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되었는데 그 연대가 기원전 4955±15년이므로 기원전 5000년, 지금으로부터 7000년 전으로 올라간다.

 양자강하류 즉 하모도유적이 있는 太湖지구 주변에서는 야생종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벼농사 중심지의 하나로 보는 견해가 강하게 대두된다. 이제까지 중국의 볍씨가 발견된 50개의 유적의 절대연대를 보면, 양자강하류에서 북으로 올라갈수록 후대의 것이 많다. 그 대부분이 지금으로부터 약 4000∼5000년 전의 것이 많고 벼가 풍성하게 재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볼 때 벼농사가 남쪽에서 발생했으며 발상지의 한 곳이 태호지구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하모도지역에서는 기원전 5000년의 문화로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5000∼4000년 사이의 양자문화 등이 계속되어 지금으로부터 7000년 전부터 4000년 전까지 영속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한 문화가 이어져 내려왔다. 이런 의미에서 고고학자들은 태호지구를 벼농사의 기원지 중 하나로 중요시하고 있다. 반면 농학자들은 야생종을 총망라하고 있고 기후 조건이 알맞은 인도의 아삼 벵골만 벨트지역을 기원지로 보는 견해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벼는 이 화남지역으로부터 파급된 것이 한반도로 들어왔을 것인데, 그 전파 경로는 크게 세 가지 루트가 상정된다. 첫째는 북로(북방)설인데 인도의 아삼과 운남성 일대에서 북상하여 하모도가 있는 양자강 하류 지역에서 다시 북상하여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통하여 육로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하는 견해이다. 둘째는 황해를 곧바로 건너 들어왔다는 황해횡단설이다. 중국의 양자강 하류에서 쌀과 수확 도구인 배 모양의 반달칼이 나왔다. 그것들은 한반도 서해안에서 나온 유물들과 아주 흡사해서 황해횡단설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중국의 사회과학원 안지민은 기원전 10세기경에 한국과 일본으로 동시에 벼농사가 전래됐다고 주장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오래된 시기의 유적이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설 자체에 머문 채 학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셋째는 남방설이다. 인도의 아삼과 중국의 운남성 지역에서 타이를 거쳐서 오키나와를 지나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증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이 설의 성립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벼 전래는 북로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황해횡단설도 유력한 가설로 남아 있다. 우리 학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연구가 미약한 편이다.

 1936년까지만 해도 김해패총에서 나온 탄화미가 1세기경의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기원전 3세기의 쌀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쌀은 일본에서 유입됐다는 설마저 대두되고 있었다. 당시까지 한국에서는 많은 유적을 발굴하고도 농경에 관련된 자료들이 나오지 않아 자료의 빈곤은 북로설을 주장한 학자들을 수세에 몰리게끔 한 것이었다. 지난 1972년부터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야산에 있는 청동기시대유적을 연차적으로 발굴조사하여 온 필자는 1975년과 1976년에 흔암리유적발굴에서 미세자료를 찾아내는 방법을 응용했다. 채집한 흙을 가는 눈금이 있는 그물에 거르는 방법인 부유법으로 많은 곡물 자료를 얻었다. 흔암리의 시료를 연대측정한 결과 기원전 13세기, 10세기경, 7세기경 등으로 측정되었고, 이에 따르면 한반도의 벼농사는 기원전 10세기경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흔암리의 발굴 결과로 인해 수세에 몰렸던 북로설의 입장이 많은 지지를 얻게 되었다.

 흔암리유적 발굴 5년 뒤에 평양에서 남경유적이 발굴조사되어 농경관계에 중요 자료들이 제시되었다. 36호 주거지에서는 탄화미 250여 개와 보리·조·수수·기장 등이 출토되었으며, 그 내용이나 연대는 흔암리와 비슷하다. 충남 부여군 조천면 송국리유적에서는 잡곡류는 나오지 않았으나 탄화미가 300g 정도 나왔는데 기원전 6∼5세기경으로 밝혀졌다. 일본학자들은 이 같은 결과를 보고 흔암리유적과 남경유적에서는 논농사가 아니고, 송국리유적에서부터 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청동기시대는 신석기시대 채집경제에서 식량생산 경제로의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 시대였다. 이때부터 안정된 생활,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큰 혁명이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지도력이 필요했고 관개사업도 벌여야했기 때문에 자연히 정치적인 힘도 생겨났다.

 이상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로서 벼농사와 관련한 농경의 제반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직은 농경의 기원에 대한 확고한 설명을 하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하므로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자료의 축적과 함께 주변 국가와의 연계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任孝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