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1. 중앙통치조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1. 백제의 기원
          • 1) 백제 초기사를 보는 시각
          • 2) 건국설화
          • 3) 건국집단의 기원과 주민구성
            • (1) 건국집단의 기원
            • (2) 주민구성
        • 2. 백제의 성립과 발전
          • 1) 백제국과 목지국
          • 2) 백제국 성장의 배경
          • 3) 백제국의 성장
          • 4) 정복전쟁과 마한통합
      • Ⅱ. 백제의 변천
        • 1. 한성시대 후기의 정치적 변화
          • 1) 한강유역의 상실
            • (1) 왕위계승 분쟁과 왕권의 쇠퇴
              • 가. 4세기 후반의 왕위계승 분쟁
              • 나. 왕비족의 교체와 상좌평제의 설치
            • (2) 개로왕대의 왕권강화 시도와 파탄
          • 2) 백제와 신라의 동맹
        • 2. 웅진천도와 중흥
          • 1) 동성왕의 활동
            • (1) 웅진천도와 정정의 불안
            • (2) 웅진시대의 정치적 변화상
            • (3) 동성왕의 왕권강화책과 신진세력의 등장
              • 가. 동성왕의 즉위와 신진세력의 등장
              • 나. 동성왕의 왕권강화책
          • 2) 무령왕의 활동
            • (1) 무령왕의 출자와 즉위과정
            • (2) 무령왕의 왕권안정을 위한 시책
              • 가. 지배세력의 개편과 중앙집권력 강화
              • 나. 대외관계의 변화
        • 3. 사비천도와 지배체제의 재편
          • 1) 성왕의 사비천도
          • 2) 정치체제의 개편
            • (1) 5방제의 실시
            • (2) 22부사의 설치
        • 4. 지배세력의 분열과 왕권의 약화
          • 1) 집권체제의 모순
          • 2) 귀족세력의 분열
          • 3) 대외관계의 변화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1. 중국왕조와의 관계
          • 1) 대중관계의 시작
          • 2) 대중관계의 전개
            • (1) 한성시대
            • (2) 웅진시대
            • (3) 사비시대
            • (4) 멸망 이후
          • 3) 대중관계의 성격
        • 2. 백제의 요서영유(설)
          • 1) 요서영유설에 대한 여러 견해
          • 2) 요서영유 기사의 분석
          • 3) 남북조의 백제·고구려관
          • 4) 낙랑·대방의 요서이동과≪송서≫·≪남제서≫
            • (1) 낙랑군과 대방군
            • (2) 낙랑·대방의 요서이동과≪송서≫·≪남제서≫
        • 3. 왜와의 관계
          • 1) 대왜관계의 시작
          • 2) 대왜관계의 전개
          • 3) 대왜관계의 성격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제
          • 2) 행정조직
          • 3) 왕도조직
          • 4) 귀족회의체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1) 담로제
            • (2) 방·군-성(현)제
            • (3) 촌락사회의 편제
          • 2) 군사제도
            • (1) 군사제도의 정비
            • (2) 군사권의 행사와 위임
            • (3) 군사조직과 병력의 충원
          • 3) 성곽시설
        • 3. 경제구조
          • 1) 토지제도
            • (1) 지배층의 토지지배 유형과 성격
            • (2) 농민의 토지소유
          • 2) 조세제도
            • (1) 세제의 내용
              • 가. 조와 조
              • 나. 역역
          • 3) 산업
            • (1) 농업생산력의 발전
              • 가. 백제 초기의 수전개발과 농업생산력의 진전
              • 나. 4∼5세기 농업생산력의 발달
            • (2) 수공업의 발달
              • 가. 관영수공업의 성장과 경영형태
              • 나. 민간수공업의 성장
              • 다. 각종 수공업기술의 발전
        • 4. 사회 구조
          • 1) 신분제
            • (1) 왕족·왕비족
            • (2) 귀족·관료
            • (3) 민
            • (4) 노비
          • 2) 법률과 풍속
            • (1) 법률
            • (2) 풍속
              • 가. 학술
              • 나. 신앙
              • 다. 예속
              • 라. 잡희
              • 마. 기사
              • 바. 문신·편두
              • 사. 씨름
              • 아. 황칠수
              • 자. 기타 풍속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08권 삼국의 문화
    • 09권 통일신라
    • 10권 발해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42권 대한제국
    • 43권 국권회복운동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46권 신문화운동 Ⅱ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3) 왕도조직

 백제의 왕도는 시기에 따라 몇 차례 변화하였다. 시조 온조가 처음 도읍한 곳은 河北慰禮城이었는데 오늘날 중랑천 일대에 비정되고 있다.531) 그 후 백제는 낙랑과 말갈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하남위례성으로 옮겼다. 하남위례성의 위치는 夢村土城에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532) 백제가 하북위례성에서 하남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긴 시기에 대해 온조왕대로 보는 설, 비류왕대로 보는 설 등이 있으나 필자는 초고왕대로 보고자 한다.533)

 하남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백제는 왕도조직을 점차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갖추어진 왕도가 바로 漢城이다. 왕도 한성내에 왕성이 있었는데 이 왕성은 북성과 남성으로 구분되었다.534) 북성은 풍납동토성에 비정되고 남성은 몽촌토성에 비정된다.

 왕도내의 왕성에는 왕궁이 있었고, 또 별궁도 있었다.535) 그리고 동명을 모신 東明廟와 천지에 제사지내는 南壇이 있었다. 풍납동토성내에서 발굴된 東晉에서 만들어진 靑銅鐎斗는536) 이러한 제의에 사용된 제기이다. 이외에 政廳으로서 南堂과 여러 관부가 있었고, 왕과 귀족들이 활쏘기 연습을 하는 射臺도 있었다. 왕궁을 비롯한 이러한 건물들은 기와집이었다. 이는 풍납동토성에서 기와가 출토된 것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한성의 내부구조는 몽촌토성의 발굴에서도 왕궁터가 확인되지 않아537) 분명히 하기는 어렵다.

 웅진도읍기의 왕성인 웅진성은 오늘날의 公山城이다. 이 공산성내에서는 근래 왕궁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538)≪삼국사기≫에는 동성왕 22년(500)에 臨流閣이 축조되었다고 하였는데 발굴 결과 이 임류각은 6칸×5칸의 건물이었음이 밝혀졌다. 이외에 왕도내에는 大通寺 등 사찰도 조영되었고, 熊津市의 존재에서539) 보듯이 상설시장도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금강에 연하여 蓮池도 만들어졌다.

 사비시대의 왕도는 오늘날 부여이다.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것은 성왕 16년(538)인데, 이 천도는 성왕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계획적인 천도였기 때문에 사비도성은 왕성·관아의 축조, 시가지의 정비 등 수도로서의 면모를 보다 잘 갖출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비시대의 도성은 扶蘇山城과 연결되는 나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왕궁은 부소산성 밑의 옛 박물관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540) 이 나성 안의 시가지는 5부로 조직되었다. 5부는 수도의 행정조직인데 그 명칭은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였다.541) 이 5부는 각각 5巷으로 나뉘어졌다. 이 5부-5항제의 실시는 사비도성의 시가조직이 坊里制로 이루어진 것을 말해 주는데, 이는 옛 부여박물관 앞쪽에서 백제 당시의 직선도로가 발견된 것에서 입증된다.

 이 도성내에는 1만 가구가 거주하였는데542) 이들은 크게 士와 庶로 나뉘어졌다. 사는 관인을 배출하는 지배신분층을 말하며 서는 일반민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료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부명과 관등명을 가진 인물들은 사 출신이라 할 수 있다. 도성내에는 사가 거주하는 지역과 일반민이 거주하는 지역이 구분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5부에는 각각 500명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달솔의 관등을 가진 자가 그 장에 임명되어 군대를 통솔하였다. 따라서 이 부는 수도를 방어하고 경찰업무를 관장하는 일종의 군사구역적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531)崔夢龍,<漢城時代 百濟의 都邑地와 領域>(≪震檀學報≫60, 1985), 216∼218쪽.
532)崔夢龍, 위의 글.
533)하남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긴 시기에 대한 여러 견해는 盧重國, 앞의 책, 55∼59쪽 참조.
534)≪三國史記≫권 25, 百濟本紀 3, 개로왕 21년.
535)≪三國史記≫권 25, 百濟本紀 3, 아신왕 즉위년.
536)金元龍,≪風納里土城包含層調査報告≫(서울大 考古人類學科, 1967) 참조.
537)夢村土城發掘調査團,≪夢村土城發掘調査報告書≫(서울大 考古學科, 1985) 참조.
538)安承周·李南奭,≪公山城百濟推定王宮址發掘調査報告書≫(公州大 百濟文化硏究所, 1987) 참조.
539)≪三國史記≫권 26, 百濟本紀 4, 삼근왕 2년.
540)成周鐸,<百濟泗沘都城硏究>(≪百濟硏究≫13, 忠南大 百濟硏究所, 1982) 참조.
541)≪周書≫권 49, 列傳 41, 異域 上, 百濟.
542)위와 같음.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