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서명학파
원측의 포용적인 사상 경향을 잇는 제자들은 현장―규기로 이어지는 당의 법상종과는 다른 별도의 학파를 이루었고, 이를 원측이 활동하던 사원을 따라 西明學派라 부르는데 勝莊·道證·道倫(遁倫) 등이 이 범주에 든다.
원측의 사리탑명에는 慈善과 승장의 이름이 나오는데 자선은 행적을 확인할 수 없다. 승장은 義淨의 번역장에 證義로 참가하고 보리유지 번역장에 執筆과 증의로 참가한 범어전문가로서 유식과 인명에 대한 여러 저술이 있다. 승장은 원측의 입적 후에 사리를 나눠다 종남산 豊德寺에 새 사리탑을 세워 원측에 대한 숭모 풍조를 확대한 인물이었다.
도증은 원측의 문하로≪成唯識論要集≫을 비롯하여 유식과 인명에 대해 7종의 저술을 남긴 유식사상가였다. 그는 효소왕 원년(692)에 신라에 귀국하여 왕에게 천문도를 바쳤다. 이렇게 하여 원측의 유식학이 도증을 통해 신라에 본격적으로 전수되었을 것이다. 대체로 원측의 설을 계승 옹호하였던 도증의 사상은 太賢에게 계승되어 신라 법상종 성립의 사상적 배경을 이루었다.
중국에서 주로 활동한 도륜은 당대 유식사상을 집대성한≪瑜伽論記≫(705) 20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긴 인물인데 이를 포함하여 모두 18종 57권에 이르는 많은 저작을 남겼다.≪유가론기≫에는 당시 당과 신라의 유식학승들의 학설이 망라되어 있는데, 여기에 보이는 도륜의 견해는 규기의 법상종 정통설과는 차이가 있다.
서명학파와는 경향이 다른 신라출신 유식학승으로 神昉이 있다. 신방은 현장 문하 四哲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었으며 弘福寺 譯場에 참가하여≪大菩薩藏經≫의 번역작업에서 綴文의 역할을 맡아 번역된 漢語를 문장으로 만들었고,≪本事經≫을 번역하는데 筆受의 일을 맡았으며≪地藏十輪經≫이 번역되자 그 서문을 쓰고≪大般若經≫의 번역에도 참가한 번역의 대가였다. 신방은≪十輪經≫에 대한 저술을 많이 남겼고≪成唯識論要集≫등 신유식 사상에 대한 저술도 지었다. 또한 고행과 걸식을 일삼으며 하루 여섯 차례 지장예참에 열중하였던 수행인의 면모도 함께 가졌던 인물이었다.1042)
1042) | 金南允,≪新羅 法相宗 硏究≫(서울大 博士學位論文, 1995), 23∼26·34∼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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