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술
1) 건축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새로운 왕조가 일어나면 왕권의 확립과 과시 그리고 왕권체제의 정비 등을 위하여 건축활동이 활발해진다. 고려시대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특히 태조는 불교를 깊이 신봉하여 그의 통치기간 중에도 사찰 창건이 많았고, 그와 같은 풍조는 그 뒤 여러 왕들에 의해 계속되었다. 또 태조 2년(919)에는 도읍을 개성에 정하여 松嶽山 아래에 궁궐을 건립하고 도성을 축조하는 등 건축활동이 활발하였고, 아울러 북변 방위를 위하여 많은 성곽과 防壘들을 축조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건축활동에 관해서는≪高麗史≫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궁궐이나 사찰의 모습에 관해서는≪高麗圖經≫에서 상당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또 태조는 개성 궁궐 이외에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평양을 매우 중시하여 이곳을 西京으로 정하고 궁궐을 영위하였는데 그 모습은 거의 왕성과 비슷했다고 한다.535)
성종 때에 이르러서는 風水地理思想에 입각한 ‘開城의 地氣가 쇠퇴하여 왕업이 길지 못하니 吉地를 택해 離宮을 만들어 왕이 이곳을 巡駐함으로써 개성의 지기를 보강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를 東京으로 삼고 궁궐을 경영하였다. 즉 개성의 中京과 아울러 삼경을 경영하였고, 뒤에 문종이 한양에 南京을 설치하였으므로 개성 외에 3경을 두었다. 이것은 고려 말의 三蘇설치와 같은 의념의 사업이었다.
이와 같이 활발했던 건축활동에 의해 많은 목조건물이 건립되었을 것이나, 지금은 이 시기에 건립된 목조건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고, 몇몇 유허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 유허들에 대한 광범위하고 정밀한 조사사업도 거의 실시된 바 없고, 얼마간 남은 건축관계 문헌기록도 하나하나의 건물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여기에서는 고려 전기에 있어서의 주요한 건축활동과 개성 궁궐과 도성의 구성 및 사찰의 伽藍배치 등에 관하여 문헌자료와 약간의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개관하겠다. 그리고 목조건물의 양상을 중국과 일본의 이 시기에 해당하는 건물을 참고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535) | 徐兢,≪高麗圖經≫권 3, 城邑, 郡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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