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음악
한국음악사가 한민족의 음악역사이듯이, 고려음악사는 고려시대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인이 남긴 음악문화의 역사이다. 이러한 고려음악사는 한국음악사의 전체적인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거의 5세기에 걸치는 동안 고려왕조가 통일신라의 음악문화를 계승하여 발전시켰음은 물론이고, 송나라의 음악문화를 자주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음악문화를 조선왕조에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외래음악의 자주적 수용과 창조적 계승은 한민족의 음악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보여준 문화역량의 대표적인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려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宋의 敎坊樂과 詞樂이 唐樂으로, 또 大晟雅樂이 雅樂으로 고려에 수용됨으로써, 고려의 당악과 아악은 한국음악사의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고려음악사의 중요한 의미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또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전통음악 중에서 步虛子와 洛陽春의 역사적 유래를 추적해 보면, 그 근원이 고려에 소개된 송나라의 교방악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현행 宮中呈才 중의 하나인 抛毬樂이나 제례음악인 아악의 뿌리도 역시 고려시대로 소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행 전통음악과 맥락을 같이하는 고려음악사에 대한 연구는 다른 시대에 비해서 미비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음악사연구의 핵심인 古樂譜가 부족하기에 오직 문헌 중심의 연구밖에 할 수 없는 형편 때문이다.≪高麗史≫ 樂志가 기본사료임은 물론이고,≪高麗圖經≫이나≪高麗名賢集≫과 같은 문헌도 음악사연구의 필수적인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헌사료는 音樂樣式史의 연구에는 결정적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고려음악사의 서술은 음악양식의 변천에 초점을 맞출 수 없고, 다만 음악제도와 음악문화를 중심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고려시대의 음악문화는 크게 鄕樂·唐樂·雅樂의 세 갈래로 나누어 개관할 수 있다. 고려의 향악과 당악은 통일신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아악은 고려조정에 소개된 송나라의 大晟雅樂에서 유래되었다. 이런 세 갈래의 음악문화 이외에 鼓吹樂과 伎樂이라는 새로운 갈래가 고려시대에 등장하였다.
고려의 향악은 통일신라의 三絃과 三竹을 전승한 바탕 위에 새로운 향악기를 첨가시킴으로써,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향악정재에서 쓰인 아박·무고·무애 같은 향악기 및 장고·해금·피리 같은 새로운 향악기에 의해서 고려의 향악은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평조와 계면조라는 향악의 음악적 특징이 고려시대에 확립되었고, 당악정재와 대칭을 이루는 향악정재가 고려시대에 등장함으로써, 향악의 개념은 고려시대를 거치는 동안에 확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넓은 의미로 확대된 개념의 향악은 모두 왕립음악기관인 大樂署의 右部에서 연주되었다.
향악의 경우처럼 당악의 개념도 고려시대에 더욱 확대되었다. 통일신라의 당악은 당나라에서 수입된 음악문화를 가리켰지만, 고려의 당악은 신라의 당악전통 위에 송나라의 음악문화를 첨가시킨 결과물이었다. 그러므로 고려시대 당악의 개념이 광의로 해석되어야 하는 변천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고려 당악의 기둥은 송나라의 교방악과 사악으로 구별되는데, 이러한 당악의 전통은 조선왕조의 당악정재를 통해서 후대에 전승되었다. 이렇게 고려조정에 수용된 당악은 대성아악의 수용과 함께 고려음악사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대성아악의 등장은 한국음악사의 큰 흐름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시키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12세기 이전의 음악문화는 향악과 당악으로 구성되었지만, 대성아악의 출현으로 인하여 아악이라는 새 물줄기가 고려음악사에 새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송의 대성아악이 고려에서 변천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후에 신흥사대부들에 의해 그 아악전통이 조선 초기의 아악부흥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가 현행 문묘제례악이나 종묘제례악의 뿌리가 되었다.
한편 향악·당악·아악의 세 주류 이외에 고취악과 기악이라는 작은 물줄기가 고려음악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衛仗이나 鹵簿의식에서 국왕의 거둥이나 행차 때 사용된 행악계통의 고취악이 연주되었다. 歌舞百戱로 알려진 伎樂과 雜技와 같은 공연예술은 팔관회·연등회·나례의식과 같은 궁중행사와 함께 성장하였다. 고려의 고취악 및 기악과 잡기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갈래로 음악문화로 발전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그 음악사적 의미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음악문화의 대부분이 고려조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왕립음악기관의 제도사적 측면을 개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