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의료제도
조선 초기의 의료제도는 개국 당시에는 고려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태종에서 성종 때까지 개편과 정비를 거듭하여 고려시대보다 훨씬 확충된 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즉 三醫司는 물론 濟生院과 東西活人院(活人署)의 기능을 정비·강화하였고, 의정부·육조·종친부·충훈부·도총부 등 각사에 도 의원을 배치하였으며, 경성 5부와 성균관에도 月令醫를 파견하였다. 또 한 전옥서에는 獄醫를, 삼군에는 軍醫를, 그리고 수군영에는 海道醫員을 배정하였고, 각 계수관마다 醫院을 설치하여 지방민의 치료를 담당하게 하였는데, 지방민에 대한 구료는 각 도에 파견된 審藥·醫學敎援와 지방의 의생이 모두 함께 담당하였다.623)
한편 의약활인법을 제정하여 의원을 발탁하였고, 우수한 의원을 보다 많이 양성하기 위해 의원과 의생의 교육을 강화하였으며, 세종 때에는 醫書習讀官制를 신설하여 양반 자제에게도 의학을 공부하도록 권장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도 外科醫·鍼灸醫·獸醫 등 전문의가 존재하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세종대부터 침구의 등 전문의를 양성하였다. 따라서 조선 초기에 침구의·瘰癧醫·治朣醫(외과의) 등이 전문의로서 각 醫司에 배치되어 활동함으로써 의술의 전문화에 큰 진전이 있었다. 선초에 편찬된 여러 우수한 의학서적도 이러한 의학의 학문적·기술적·발전을 토대로 한 것이다. 특히≪鄕藥集成方≫과≪醫方類聚≫는 조선 초기 의학의 결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개발과 보급을 위해 노력해 온 향약은 조선 초기, 특히 세종대에 이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즉 전국의 향약 재배의 실태를 조사하고, 그 채취 시기와 방법 및 乾正法 등을 하달하였으며, 중국에 의원을 파견하여 약성을 감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향약을 연구·개발하기 위해≪鄕藥濟生集成方≫·≪鄕藥採取月令≫·≪鄕藥集成方≫등 우수한 의서를 편찬하였다.
태종대에는 한국 의학사상 최초로 의녀제도를 창설하여 부녀자의 질병을 돌보게 하였다. 의녀제도의 실시는 부녀자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는 것 이외에 비록 官婢 출신이기는 하였지만, 여성의 사회참여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이었으며, 이후 産婆라는 새로운 여성 직업인이 탄생하여 사회에 기여한 것 또한 매우 흥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여성의 사회참 여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당시에 이들의 활동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매우 큰 것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 초기의 의학은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크게 발달하여 한국 의학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의료제도 또한 전보다 더욱 발전하여 국민에 대한 의료혜택의 폭을 확대함으로써 조선시대 의료제도의 기반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623) | 三醫司는 처음에는 典醫監·惠民局·濟生院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세조 때 제생원이 혜민국에 합속된 뒤로는 內醫院·典醫監·惠民署를 지칭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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