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국제교역의 발달과 마찰
1) 중국·일본 사이의 중개무역
(1) 책봉체제와 동아시아 국제교역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명 황제와 주변국 왕을 군신관계로 맺는 冊封體制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은 태종 3년(1403) 4월, 일본은 같은 해 11월에 명의 책봉체제 속에 편입되었다.264) 책봉체제 아래에서는 외교와 무역이 미분리된 채 정치적 지배자가 동시에 무역의 주체이기도 하고, 朝貢이라는 외교상의 의식에 수반된 무역이 이루어졌다.265) 명에 대한 조공과 이에 대한 回賜가 유일한 합법적인 무역이었다. 명은 이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海禁정책을 실시하여, 공적 사절 외에는 자기 나라 사람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였다. 또한 명에 오는 사절은 명이 지급한 渡航증명서를 휴대하도록 하였다.266) 명의 책봉체제는 중국의 전통적인 華夷思想의 발로로서, 이웃 나라에 臣屬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신속의 구체적인 표시를 조공으로 요구하였듯이, 명분에 못지않게 교역상의 실리도 가지고 있었다.267)
책봉체제는 通交機構의 성립으로 규정되듯이, 동남아시아까지 확대된 교역권을 하나의 질서로 안착시키는 데 중요한 의도가 있었다.268) 하나의 통교기구 아래 새로이 출범한 동아시아 국제교역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269) 특히 16세기 이후 동아시아 국제교역은 활발한 전개를 보여 동아시아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교역 참가국·상품·교역량 등에서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교역 당사자로는 중국·한국·일본 외에도, 포르투갈·琉球상인 등이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였다.270)
| 264) | 孫承喆,≪朝鮮時代 韓日關係史硏究≫(지성의 샘, 1994), 27∼70쪽. |
|---|---|
| 265) | 田代和生,≪近世日朝通交貿易史の硏究≫(東京;創文社, 1981), 3쪽. |
| 266) | 村井章介,<冊封=海禁=勘合システムの崩壞>(≪環日本海と環シナ海≫, 日本の歷史 別冊 14, 東京;朝日新聞社, 1995), 2쪽. |
| 267) | 李泰鎭,<16세기 東아시아 경제 변동과 정치·사회적 동향>(≪朝鮮儒敎社會史論≫, 지식산업사, 1989), 104쪽. |
| 268) | 田中健夫,<東アジア通交機構の成立と展開>(≪岩波講座 世界歷史≫9, 東京;岩波書店, 1970 ;≪中世對外關係史≫, 東京大出版會, 1975). |
| 269) | 李泰鎭,<16세기 東아시아의 歷史的 狀況과 文化>(≪韓國社會史硏究≫, 지식산업사, 1986), 312쪽. |
| 270) | 李泰鎭,<前近代 韓·中 交易史의 虛와 實>(≪震檀學報≫78, 1994), 174∼177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