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공무역
공무역은 정부가 관용 물품으로써 교역하는 형태로, 세종초에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구리·납·소목·후추 등을 대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 밖에 금·朱紅·丁香·白檀香 등도 공무역을 통해 수입되었다. 공무역은 물품의 교환비율이 정해져 있었다.280) 구리의 경우 上品은 2근 반에 면포 1필, 下品은 4∼5근에 1필 정도였다. 황금은 1냥에 면포 30필 정도였다.281) 수입품의 값은 대개 綿紬·正布(麻布)·면포를 等分하여 지급하였다. 그러나 면포의 품질이 좋아짐에 따라 일본은 모두 면포로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282)
15세기 중반 이후 면화재배 지역은 계속 북상하였다. 면화재배의 확대로 생산량이 늘어난 면포는 대일무역의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16세기말까지 면화재배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일본은 곡물 못지않게 면포를 중요한 수입품목으로 여겼다. 면포 수출량은 15세기 후반부터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면포는 중요한 수출품이면서, 국내 경제에서는 교환의 척도인 화폐기능을 하여 상업 발달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283)
일본에서「應仁의 亂」이 한창일 때 막부의 政所執事 伊勢政親이나 近江·出雲의 守護인 佐佐木京極政經은 군복 원료용으로 조선에서 대량의 면포를 수입하였다. 성종 4년(1473)에는 ‘日本國 防長攝泉四州太守’ 大內別駕多多良政弘이 淸水寺 재건 비용으로 동전·면주·면포 등을 요구하고, 정포 천 필, 면포 천 필, 糙米(현미) 500석을 얻었다. 이 때부터 일본의 大名이나 國人領主 등이 구리 등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면포를 얻는 것이 일반화되어 갔다.284) 그 결과 성종 6년(1475)에는 서울과 경상도 倭館에서 지급된 면포가 27,800필, 다음해에는 37,421필로 증가하였다.285)
일본측은 성종 20년에는 구리 2만 근 값을 모두 면포로 지급하지 않으면 구리를 다시 가지고 오라고 대마도주가 지시할 정도로 면포를 선호하였다. 성종 21년 당시 대마도주가 보낸 황금과 주홍에 대한 공무역 지급 면포값이 10,750필 23척이나 되었다. 공무역 수입가로 지불되는 면포가 과다하여 국내 면포가 부족하게 되자, 조선정부는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종전대로 면주·정포·면포로써 지급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홍의 공무역 값이 사무역보다 많이 지급되므로, 이를 줄이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황금 1냥의 교환값은 본래 면포 30필이었는데, 25필로 낮추어서 면포의 평가비를 높이려고 하였다.
일본의 요구는 특히 목면에 한정되어 있었다. 대마도나 북구주·山陰지방에서는 작은 배로도 조선과 왕래하며 목면을 수입해 갔다. 따라서 민간상인의 거래까지 포함시키면, 일본의 면포요구는 조선 내수용분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15세기말∼16세기에 목면의 대일수출은 점차 통제되어 갔다. 이에 일본은 중국으로부터「唐木綿」을 수입하려는 움직임이 강하였다.286)
처음 군수용으로 일본에 전래된 목면은 서민 衣料品으로 크게 보급 발전되었다.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까지의 약 1세기 동안 조선에서 수출된 면포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동시에 이식목면이 정착하여, 三河·遠江 등 東海道 지방산 목면이 상품으로서 일본 국내시장에 출회되기 시작하였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걸쳐 조선측의 무역제한에 의해 면포 수입량이 감소하는 대신, 품질이 뛰어난 중국산 당목면이 수입되어 조선면포를 구축하여 갔다.287)
| 280) | 田中健夫,≪中世海外交涉史の硏究≫(東京大出版會, 1959), 69∼75쪽. 中村榮孝,≪日本と朝鮮≫(東京;至文堂, 1966), 1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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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1) | ≪成宗實錄≫권 238, 성종 21년 3월 을축. 단≪成宗實錄≫권 225, 성종 20년 2월 무오조에는 “舊例에는 황금 1냥에 면포 25필을 지급하였다”고 하였다. |
| 282) | ≪成宗實錄≫권 266, 성종 23년 6월 경신. |
| 283) | 李泰鎭,<國際貿易의 성행>(≪韓國史 市民講座≫9, 一潮閣, 1991), 69쪽. 宋在璇,<16世紀 綿布의 貨幣機能>(≪邊太燮博士華甲紀念 史學論叢≫, 三英社, 1985). |
| 284) | 永原慶二,≪新·木綿以前のこと≫(中公新書 963, 東京;中央公論社, 1990), 60∼67쪽. |
| 285) | 小野晃嗣,≪日本産業發達史の硏究≫(東京;至文堂, 1941). 永原慶二, 위의 책, 66∼67쪽. |
| 286) | 永原慶二, 위의 책, 66∼68쪽. |
| 287) | 佐佐木銀彌,<海外貿易と國內經濟>(≪講座日本史≫3, 東京大出版會, 1970), 186∼187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