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붕당의 출현
오랜 기간에 걸친 훈척세력과의 정치적 투쟁을 통하여 성장하여 온 사림세력은 선조 초반에 이르러 마침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趙光祖 등의 己卯士類에 의해 주창된 이래 그들이 추구해마지 않던 사림정치를 비로소 현실의 정치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게 된다. 붕당의 출현도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의 하나였다.
붕당의 출현과 관련해서는 그 배경으로 여러 가지 說이 말해지지만 현재까지의 연구수준에서 볼 때, 바로 이러한 사림정치의 구현방식과 그에 의한 정국운영을 놓고 사림사이의 의견차이와 이해관계의 대립에 따른 정치적 갈등의 결과인 사림내부의 분열이라고 하는 설명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그리고 붕당이 처음 나타난 이 선조 연간은 그것의 초창기여서 정국운영이 미숙하였던 탓으로 붕당간 대립의 열도가 심하고 또 분열의 양상도 지리멸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후일 인조 연간에 들어가 비로소 일정한 정치형태를 갖춘 붕당정치로 발전해 간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선조 연간 붕당의 출현에만 국한시키기로 한다.0033)
0033) | 붕당의 출현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당쟁’의 발생이란 측면에서 일찍부터 관심이 두어져왔고 따라서 이에 관해 언급한 연구가 적지 않다. 여기서는 최근에 연구된 아래의 성과를 주로 참고하였다. 이태진,≪朝鮮後期의 政治와 軍營制 변천≫(한국연구원, 1985). 구덕회,<선조대 후반(1594∼1608) 政治體制의 재편과 政局의 동향>(≪韓國史論≫ 20, 서울大, 1989). 정만조,<16세기 士林系 官僚의 朋黨論>(≪韓國學論叢≫12, 國民大, 1989). 김항수,<선조 초년의 新舊 갈등과 政局動向>(≪國史館論叢≫34, 國史編纂委員會, 1992). 그런데 붕당출현에 관한 이해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史料상의 문제다. 임진왜란으로 선조 전반기의 公私文籍이 소실되어 버림으로써≪宣祖實錄≫의 零星한 기록에서 보듯이 사실의 파악조차 쉽지 않은데다가, 이를 보완해주는 후대의 기록들이 대부분 黨色에 따른 편파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어서, 사건의 진상과 사실의 진면목을 전해준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붕당 출현을 포함한 선조 전반기의 정치사 설명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사료상의 한계가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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