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견청년’의 양성
지방기관에서 중견청년을 양성하는 모습은 1920년대 전반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충청북도 학무과에서는 1923년 ‘사회의 중견인 일반청년을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中堅靑年修養團’을 조직하고 영동공립보통학교에서 9월 27일부터 10월 1일까지 1주일간 강연 및 실지운동을 실시했다. 대상자들은 영동·옥천·보은 3개군의 보통학교 졸업생 가운데 유망한 청년을 각 학교마다 약 10명씩을 선발, 모집하였으며 강연자는 충북지방 교화촉탁·학무과장·농업학교장·사범학교장·영동군수·영동경찰서장 등으로 학술·수양·체육 및 활동사진 등을 실시했다. 여기에는 각 보통학교장들이 참석하도록 했으며, 회원의 식비를 비롯한 일체 경비와 약간의 日當金까지 도청에서 지불하였다.755)
1920년대 중∼후반에 들어와서 조선총독부와 지방기관들은 ‘중견청년’의 양성이란 이름으로 조선청년을 체제 내로 끌어들이거나 친일·어용화하는 데 적극 나섰다. 이러한 사업은 ‘농촌청년지도교육회’·‘중견청년강습회’·‘농촌청년강습회’ 형태로 대부분 농촌청년에 집중되었다. 그 실상은 황해도의 경우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황해도는 도내 학교의 여름방학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농촌청년강습회’를 실시했다. 도는 이것을 학교 중심의 사회교화사업으로 실시하였으며, 농촌지역의 ‘중견청년’을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756)
농촌청년강습회의 목적:공립보통학교 졸업생의 剛健한 정신을 함양하고 아울러 농촌에 堅要한 實業 지식을 보급함을 목적함.
개최지:해주군·연백군·송화군·안악군·신천군·황주군·재령군·평산군 등 8개소
기간:12일간
강습인원:30명
대상:18세 이상 25세 이하의 해당 지역 보통학교 졸업생
과목:修身과 농업
강습시간:학과와 실습 각 36시간 내외
강사:공립보통학교와 실업보습학교의 직원 및 郡의 技術員
(≪동아일보≫, 1927년 12월 18일).
특히 강습받는 청년들에겐 하루에 1인당 40錢의 식비와 별도의 왕복여비를 보조함과 동시에 공동숙박을 하도록 하는 등 지방관청에서 직접 그에 필요한 경비를 제공했다.757)
뿐만 아니라 황해도의 각 군수들은 이에 적극 협조하며 농한기 때마다 군내 각 里에 ‘농촌청년지도교육회’를 설치했다. 이것은 각 리의 유력자 사랑방이나 교회·서당 등을 빌려 운영되었으며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그 마을의 유식한 청년이 지도교육하는 ‘아주 간편한 방식’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형태의 교육회가 신천군의 호월면 일대에 10여 개소나 설치되었다.758)
이처럼 조선총독부는 지방기관을 통해 보통학교 교육을 받은 18∼25세의 청년들에게 ‘日鮮同化’에 기초한 ‘건전한 국민의 육성’을 위한 정신교육과 농업관련 기술을 교육하고 농촌지역의 개량과 산업진흥을 이끌어 갈 ‘중견청년’으로 양성함으로써 지방청년들을 체제 내로 끌어들였다.
<朴哲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