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를 알아보자.
남한의 대한 민국 정부는 민주주의 국가로의 발전을 꾀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과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갈등과 반목이 깊어갔다. 그러던 중에 북한은 남한을 무력으로 공산화하기 위해 6⋅25 전쟁을 일으켰다.
6⋅25 전쟁의 전개 과정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
켰다. 우리 국군은 북한 공산군의 침략에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공산군의 대규모 남침에 일시 후퇴하였다.

유엔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유엔군을 우리 나라에 파견하였다. 그해 9월,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계기로 북한군은 38도선 이북으로 퇴각하였다.


이 때에 국군은 북한 공산군을 무찌르기 위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게 되었다. 서로 밀고 밀리던 남과 북은, 결국 1953년 7월에 휴전을 하였고, 남북이 분단된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6⋅25 전쟁으로 우리 민족이 당한 고통에 대하여 조사하고 토의해 보자.
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전쟁 중에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민간인을 포함해서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한 가족이 남북으로 흩어지기도 하였다.
또, 수없이 많은 건물, 철도, 다리가 파괴되어 이를 다시 복구하는 데에도 오랜 기간과 많은 비용이 들었다.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하였다. 전쟁의 상처를 회복하는 일은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우리 민족의 과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와! 저렇게 많은 군인들이 죽었어요?
그렇단다. 군인뿐만 아니라, 유엔군도 자유를 위해 싸우다 전사하였단다. 그리고 수많은 민간인도 죽거나 부상을 당하였지. 또, 파괴된 것들을 다시 세우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