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멸망
궁예는 일단 자립했지만 대단히 흉포하여 부하 장수들이 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마침 그의 장수들 중에 왕건(王建)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궁예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싸워 공을 세웠으므로 그의 장병들은 모두 왕건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다. 궁예는 도망쳐 나왔는데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왕건은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高麗)로 고치고, 이듬해에 도읍을 송악(松岳) 【지금의 경기도 개성】 으로 옮겼는데, 그 세력이 나날이 강해졌다. 이에 반해 신라는 영토가 갈수록 축소되어 겨우 경주 부근만을 차지하는 데 불과하자 도저히 국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경순왕(敬順王) 【제56대】 은 왕건이 즉위한 지 18년 만에 나라를 바치고 고려에 항복했다. 이듬해에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하여 크게 격파했으므로, 후백제의 왕 【견훤의 아들인 신검(神劒)】도 역시 항복했다. 왕건은 곧 고려 태조(太祖)로서,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바로 다이고(醍醐) 천황 【제60대】 시대에 해당한다. 신라는 건국한 때부터 56왕 992년, 통일 후 268년 만에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