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기의 나라 정세
문무왕 8년부터 220년이 지나고, 진성여왕(眞聖女王) 【제51대】 이 즉위했다. 왕은 품행이 바르지 못하고 총애하는 신하를 가까이 하여 국정을 맡겼으므로, 뇌물을 공공연히 받고 상벌(賞罰)은 타당성을 잃었으며 기강이 크게 해이해졌다. 이때 도적들이 각지에서 봉기했는데, 왕족 중에 궁예(弓裔)라는 사람이 진성왕 5년에 북원(北原) 【지금의 강원도 원주】 으로 달아나 도적의 우두머리인 양길(梁吉) 휘하에 투항했다. 양길은 그를 잘 대우하여 병력을 나누어 주고 동쪽을 침략하도록 했다. 궁예는 후에 세력을 얻어 양길을 몰아내고 스스로 일어서 왕이라고 칭했으며, 도읍을 철원(鐵圓)에 정하고 나라를 태봉(泰封)이라고 했다. 이때가 효공왕(孝恭王) 【제52대】 5년이다. 이에 앞서, 견훤(甄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서남(西南) 해안의 방비를 맡았지만, 진성왕 6년에 완산(完山)에 웅거하여 나라를 후백제(後百濟)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