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佛敎)와 도교(道敎)
불교는 고려 시대에 전성기에 이르렀지만, 그 말기에는 온갖 폐해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때에 즈음하여 주자학(朱子學)이 중국에서 전해져 지식계급들 사이에서 유행하였으며, 불교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 그러나 조선 시대 초기에는 오히려 전(前) 조대(朝代)의 영향을 받아 매우 융성하였다. 특히 태조 이성계는 독실하게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 무학(無學)을 왕사(王師)로 삼고 석왕사(釋王寺)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를 건립하였다. 태조 때에 벼슬을 하여 유명한 이지란(李之蘭) 같은 사람은 남정북벌(南征北伐)하면서 대단히 많은 살육을 하였기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승려가 되었다. 이리하여 불교가 상하(上下)간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사원(寺院)은 광대한 사원의 영지(領地)와 수많은 노비를 점유하였으며, 승려는 계율을 지키지 않고 욕심이 많으며 인색한 사람이 많았으므로, 태조는 여러 차례 명을 내려 승려들이 청렴해지고 욕심을 버릴 것을 권유하였다. 태종과 세종에 이르러서는 유학을 장려하고 불교를 억압한다는 방침을 취하자, 종파(宗派)와 사원의 영지 등을 정리하는 것은 행정상 당면한 문제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