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李舜臣)
이순신의 자(字)는 여해(汝諧)로, 인조(仁祖) 원년 【우리나라[일본] 텐분(天文) 14년, 명나라 가정(嘉靖) 24년】 에 한성(漢城)의 건천동(乾川洞)에서 태어났다. 이순신의 본관은 경기도 덕수(德水)로서, 집안 대대로 유학(儒學)으로 출세하였다. 그도 역시 어릴 때 희신(羲臣)과 요신(堯臣)의 두 형들을 따라 교육을 받아 학문이 크게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서책(書冊)에 묻혀 삶을 보내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지 않았다. 22세가 되어 처음으로 무예를 배웠다. 32세 때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권관(蕫仇非堡權管)에 임명되었다. 이것은 그가 무관으로서 세상에 나온 시작이다. 그 자리에 있은 지 3년이 되어 수도로 돌아가 훈련원(訓練院) 봉사(奉事)가 되었다. 여러 차례 지방에 나가 진(鎭)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는데, 43세 때 조산(造山)의 병마만호(兵馬萬戶)가 되었고, 이듬해에 녹둔도(鹿屯島) 【함경북도 조산만(造山灣)】 의 둔전관(屯田官)을 겸하였다. 이 섬은 북쪽 변방의 외딴 지역에 있어 여러 차례 만족(蠻族)의 침입을 받아 수비가 어려웠다. 이순신은 적은 병력으로 적을 잘 정복하고, 그들의 포로가 된 민간 60여 호(戶)를 탈환하여 원근(遠近)에 용맹을 떨쳤다. 재직한 지 1년여 만에 무고를 당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얼마 안 되어 다시 등용되어 무관(武官) 겸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었다. 후에 전라도 정읍 현감(縣監)을 거쳐 진도(珍島) 【전라남도】 군수가 되었다. 이는 그가 48세 때이다. 이듬해 일본군은 대거 원정을 벌였는데, 바다와 육지의 방어가 무너져 변방에서 매일 위급함을 알려오자, 이순신은 발탁되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