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12. 대한(大韓)비고(備考)

독립협회(獨立協會)

메이지 27〜28년 전쟁 후 일본의 세력은 급격히 감퇴하고 친러파가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이에 신진 인사들은 영국과 미국의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에 대항하려고 독립협회(獨立協會)를 세우고 그 기관지로서 영자(英字) 신문인 『독립(獨立)』을 발간하였다. 이 협회의 주도권을 쥔 것은 서재필(徐載弼), 윤치호(尹致昊) 등이었다. 서재필은 일찍이 오랫동안 미국에 있었으며, 결국 그 나라에 귀화하여 이름을 닥터 제이슨 【Dr. Jaisohn】 이라고 하였으며, 서양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윤치호는 중국과 미국을 두루 유람하여 몸소 해외의 풍물을 접하고 귀국하였으므로 역시 신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협회는 처음에 정부의 동조를 받았지만, 그 주의(主義)는 너무나 혁신을 서두르고 이상(理想)에 치우쳤기 때문에 점차 정부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메이지 29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체재하자, 외국 사신의 요청을 물리치기 어려워, 삼림, 철도, 광산 등에 대한 많은 이권들을 외국인들에게 허가 해주었는데, 독립협회는 사사건건 그에 반대하였다. 한국 조정이 궁내부(宮內府) 고문(顧問)인 그레이트하우스 【Greathouse, 구례(具禮)】 의 건의를 받아들여, 황궁 수비를 위한 순검(巡檢) 30명을 상해(上海)에서 소집하자, 【메이지 31년 9월】 협회의 반항이 매우 심하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해고하였으며 그 때문에 정부의 위엄은 크게 실추하였다.

이 무렵부터 정부와 협회의 관계는 매우 험악해졌다. 정부는 예전에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洪鍾宇) 등이 조직한 황국협회(皇國協會)라는 보부상 단체에게 상무규칙(商務規則)을 허락하고, 몰래 그들을 사주하여 독립협회를 억제하려고 하였다. 보부상이란 조선 각지의 시장을 떠돌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원래 독립협회원들 가운데에는 쟁쟁한 정부 관리들이 적지 않았다. 주로 신진 인사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름을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일명 민회(民會)】 라고 고치고, 각종 협회의 회원들, 학생 생도, 하급 노동자, 맹인들까지도 규합하였다. 시민은 돈이나 곡식을 내어 그들을 원조하였으므로 그 기세는 매우 높아졌다. 때문에 윤치호가 그 회장이 되어, 헌의안(獻議案) 6조(條)를 의결하여 정부에 그 실행을 요구하였으며, 또한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실정을 비난하고 공격하였다. 이렇게 공동회는 정부에 반대하고 억압하면 할수록 더욱 반항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마침내 공동회와 황국협회의 알력은 점점 격렬해져 치안을 해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때문에 정부는 둘 다 해산시키려 하였지만 역부족으로 단행할 수 없었다.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