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백제는 어떻게 패망하였는가?
이때 백제 의자왕은 부왕[무왕] 때부터 여러 번 신라를 침략하여 한갓 국력을 소모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으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충신 성충과 흥수를 물리친 까닭에 인심이 흩어져 있었다. 따라서 나당 연합군이 침입하였을 때 의자왕은 군신을 모아 놓고 방어책을 연구하였으나 좋은 방책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동안에 신라군은 탄현[전주 논산 사이의 수치(秀峙)일까?]을 넘어오고, 당나라 군사는 백강[금강]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의 명장 계백이 결사대 5000여 명을 거느리고 황산[논산] 평야에서 신라군을 방어하였으나, 결국 나장 김유신에게 패사하였다. 이어서 서울[사비성]이 함락되어 의자왕과 왕자 부여 융 이하 대신과 백성을 합하여 일만 이천여 명이 사로잡혀서 당나라로 가게 되었다. 이것이 의자왕 20년(신라 태종무열왕 7년, 서기 660년)의 일이니 백제는 31왕 678년 만에 망하였다. 지금 부여에는 삼천 궁녀가 백마강[금강]에 떨어져 죽었다 하는 낙화암과 불타버린 군수 창고 터, 백제탑 등이 남아 있어 망국의 애화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