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종교의 신봉은 어떻게 자유롭게 되었으며 국가에는 어떠한 공적을 남겼는가?
천주교는 대원군의 박해로 말미암아 한동안 기를 펴지 못하였으나, 대원군이 용퇴한 뒤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미·영 여러 나라와 통상조약을 체결한 뒤 새로 기독교가 들어와 이상재·이원긍 등의 활동에 의지하여 여기 저기 교회가 서게 되었다. 동시에 부대사업으로서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정치·문화 또는 민족투쟁사 상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동학 역시 압박을 받아 그 발전이 한동안 꺾이더니 광무 10년 손병희가 일본으로부터 돌아와서 이름을 고쳐 천도교라 일컬으며 교도들에게 통첩을 보내 정·교의 혼동을 경계하고 학교 및 교리 연구 등 교학에 힘썼다. 천도교 역시 민족항쟁사 상에 많은 자취를 남겼다.
대종교는 단군의 옛 도를 부흥한 것으로서 광무 10년에 나철 등이 이에 힘쓰고 뒤에 김교헌·유근 등도 참가하여 교세의 확장에 노력하였으므로 이를 믿는 자가 점점 늘어 갔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희미하던 우리의 고유신앙이 다시 밝아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