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Ⅲ. 부여1. 부여의 성립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가. 대동강중심설
              • 나. 요동중심설
              • 다. 중심지이동설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가. 춘추전국시기 고조선의 영역
              • 나. 진의 중국통일과 고조선의 영역
              • 다. 한과의 관계와 위만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가. 비파형동검이 쓰이나 고조선이 출현하지 않은 시기(기원전 11세기∼9세기)
              • 나. 고조선 초기(기원전 8∼7세기)
              • 다. 고조선 중기(기원전 6∼4세기)
              • 라. 주변지역의 비파형동검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가. 세죽리-연화보유형의 문화
              • 나. 기원전 3∼2세기의 세형동검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가. 조공무역
              • 나. 명도전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가. 부여국 전기의 왕성
              • 나. 부여국 후기의 왕성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08권 삼국의 문화
    • 09권 통일신라
    • 10권 발해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42권 대한제국
    • 43권 국권회복운동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46권 신문화운동 Ⅱ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1) 부여 명칭의 기원

 ‘夫餘’라는 이름은≪史記≫권 129, 貨殖列傳에 “燕이 북으로 烏丸·부여와 인접했다”는 기록에 처음 보인다. 부여의 명칭에 대해서는≪사기≫이전 문헌인≪山海經≫에 나오는 ‘不與’라는 표기를 부여로 보거나,358)≪逸周書≫王會篇에 나오는 ‘符婁’가 부여라는 설359) 및 李巡의≪爾雅≫釋地와 邢昺의≪論語注疏≫에 나오는 ‘鳧臾’가 부여라는 설360) 등이 있으나 사실 어떠한 명확한 논증은 없다. 또한≪尙書≫周官篇의 “武王이 이미 東夷를 정벌하니 肅愼이 와서 朝賀하였다”는 구절에 대해 孔安國傳에는 “海東의 여러 오랑캐 駒麗·扶餘·馯貊 등은 武王이 商을 이김에 모두 길을 통하였다”라고 하여 부여가 무왕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공안국전 자체가 남북조시대에 쓰여진 僞書라는 주장도 있고, 공안국전의 내용이 무왕대의 사실로 믿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 부여에 관한 초기 기록으로는 신빙할 수 없다.361) 따라서 막연히 부여는 기원전 119년 한나라가 匈奴의 左地를 평정한 후부터 기원전 108년 이른바 漢四郡을 설치하기 전의 어느 시기에 출현했다고 보기도 한다.362)

 부여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부여의 원뜻이 밝(神明)에서 유래하여 개발→滋蔓→평야를 의미하는 ‘벌’(伐·弗·火·夫里)로 변화한 데서 연유하였다는 설이 일찍이 제기된 바 있다.363) 그 근거는 부여의 중심지역이 송화강 연안의 동북평원 일대이고, ‘벌’이나 ‘부리’가 서라벌·古沙夫里 등 삼국시대의 지명 어미에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여족의 일파가 세운 고구려의 句麗라는 명칭이 ‘큰 고을’ 또는 ‘높은 城’을 의미하는 ‘忽’·‘골’·‘溝漊’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과 관련되어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364) 이와 달리 부여는 사슴의 뜻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365)≪資治通鑑≫의 부여 멸망기사에 부여의 원 거주지로 나오는 ‘鹿山’이 만주어에서 사슴(鹿)을 뜻하는 말인 ‘puhu’와 몽고어에서 사슴을 뜻하는 ‘pobgo’라는 말에서 비롯하였다는 주장이다. 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鹿의 音이 ‘fu’로서 ‘夫’와 같은 음이라는 주장도 있다.366) 이 밖에 濊人의 ‘濊’는 ‘夫餘’ 두 자의 合音으로 부여는 ‘예’에서 왔다는 주장367)이 있고, 최근 한 설은 부여는 강 河流의 이름에서 온 것으로서 嫩江 중류 동측에 烏裕爾河가 있는데 이 강을 金代에 蒲與라 칭했던 점으로 보아, 부여는 ‘포여’ 혹은 ‘오위르’의 同音異寫라고 주장하고 있다.368)

 이들 논의를 살펴보면, 부여라는 명칭의 기원에 관해서는 대개 평원·강이름·산이름 등에서 유래했다는 지리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개별 주장 모두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나 분명하게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로서는 선비·烏丸 등 북방 유목민족의 종족명이 대개 그들이 원래 거주한 山名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369) 부여가 처음에는 녹산에 거주했다는 사실과 이후의 역사인 발해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로 부여의 사슴을 들고 있는 점370) 등을 고려하면 부여의 명칭 또한 퉁구스어에서 사슴을 일컫는 buyu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358)리지린은≪山海經≫大北荒經의 “有胡不與之國”이라는 구절의 ‘不與’를 扶餘로 보았다. 그러나 不與와 扶餘를 같은 音으로 보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다.
359)何秋濤는 符는 夫餘를 말하며<王會>의 濊人이라고 보았다(何秋濤,≪周書王會篇箋釋≫권 下).
360)≪字匯補≫에는 “鳧臾는 동방의 나라 이름이며 곧 夫餘를 말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361)盧泰敦,<扶餘國의 境域과 그 變遷>(≪國史館論叢≫4, 國史編纂委員會, 1989), 38쪽.
362)孫進己,≪東北民族源流≫(黑龍江人民出版社, 1987;林東錫 譯, 東文選, 1992, 232쪽).
363)崔南善,≪兒時朝鮮≫(≪六堂崔南善全集≫2, 玄岩社, 1973, 159쪽).
364)노태돈,<삼국의 성립과 발전>(≪한국사특강≫, 1990, 서울大 出版部), 52쪽.
365)白鳥庫吉,<濊貊民族の由來を述べて, 夫餘高句麗及び百濟の起源に及ぶ>(≪史學雜誌≫45-12, 1934;≪白鳥庫吉全集≫3, 1970, 516쪽).
366)武國勳,<夫餘王城新探>(≪黑龍江文物叢刊≫4期, 1983).
367)何秋濤는 “符는 곧 夫餘이고,<王會>의 ‘濊人’이다. …‘濊’는 곧 ‘夫餘’ 두 자의 合音이다”라고 하였다(何秋濤,≪周書王會篇箋釋≫권 下).
368)이 주장에서는 烏裕爾河유역을 槀離國(또는 橐離國)의 원거주지로 보고 있다(佟冬 編, 앞의 책, 337쪽).
369)≪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370)≪新唐書≫권 219, 列傳 144, 北狄 渤海.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