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2 출산하는 몸02. 임신과 태교

임신

조선에서 임신의 요체는 ‘임신하고자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임신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가장 바라는 일이었다. 조선에서 임신과 관련한 기록들은 대부분 임신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가 될 조건을 갖추고 나면, 즉 혼인을 하면 누구나 임신을 바라게 된다. 그 바람은 여러 형태로 확인될 수 있다.

정조가 할아버지 영조의 상제를 마치고 다시 왕비와 합방할 수 있게 됐을 때 신하들은 기대감이 컸다. 곧, 왕자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서 임신이 쉽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됐고 신하들은 몹시 실망하였다.

우리 전하께서 상제(喪制)가 끝나시고 예법에 의당 복침(復寢)하시게 되었기에, 8도 신민들이 목을 길게 내밀고 기대하는 정성이 바로 우리 곤전께서 독생(篤生)하시는 경사를 맞이하는 데 있었는데, 갑자기 옥도(玉度)가 편치 못하시다는 분부를 받들게 되어 갖가지 일을 기필할 수 없게 되었으니, 신민들의 놀래어 근심하며 실망함이 마땅히 어떻겠습니까?251)

<기자석>   
[국립민속박물관]

왕실의 예이긴 한데, 상례 기간 동안 합방할 수 없었다는 것, 그 이후에는 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 임신할 수 없게 됐다는 상황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이 효의 왕후는 끝내 자식이 없었다. 옥도가 편치 못하다는 것이 불임의 징조였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혼인하고 얼마 있지 않아 임신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반드시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민간 신앙을 통해 염원하였던 대표적인 것은 기자(祈子)였다. 즉, 아들을 낳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자에는 아들을 낳는 것만이 아니라 자식 자체가 없어서 자식을 갖게 해달라는 것도 포함된다. 조선에서 여성들이 기자석(祈子石)이나 삼신할머니에게 자식을 기원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에나 불임이 있고 또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임신은 일반적으로 바라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늘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양반가에서도 상례 기간 동안 합방을 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 기간에 임신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임신이 되면 당사자들로서는 대단히 난망한 일이 된다. 상제기간 동안의 슬픔을 다하지 못한 증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에서 임신을 지연시키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임신과 관련하여 더 중요한 것은 역시 건강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월경이 고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동의보감』은 “임신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월경을 고르게 해야 한다. 임신하지 못하는 부인들을 보면 반드시 월경 날짜가 앞당겨지거나 늦어지며 혹은 그 양이 많거나 적다. 이렇게 월경이 고르지 못하면 기혈(氣血)이 조화되지 못하여 임신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에 대한 처방은 대부분 월경이 고르게 하는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동의보감』은 임신이 잘 안될 때 여자들에 대해서만 얘기하지는 않는다. 『동의보감』 잡병 부인조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정액이 멀거면 비록 성생활을 해도 정액이 힘없이 사정되어 자궁으로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므로 흔히 임신이 되지 않는다.” “남자의 양기가 몹시 약해져서 음경에 힘이 없고 정액이 차면서 멀거면 고본건양단, 속사단, 온신환, 오자연종환 등을 쓰는 것이 좋다.”라고252) 하여 남자의 문제점과 그 처방에 대해 서로 언급하고 있다. 임신이 여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즉 여자의 문제든 남자의 문제든 임신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하면 임신을 잘 할 수 있는가에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임신이 되고 나야 그 다음에 태교, 출산 등이 순차적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임신은 역시 출산이라고 하는 전 과정에서 가장 기본이 되며 중요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 이순구
251) 『정조실록』권5, 정조 2년 6월 5일 계사 2번째 기사. 실록 기사는 조선왕조실록 웹서비스 http://sillok.history.go.kr 에서 인용하였다.
252) 『동의보감』 잡병편 권11, 부인 求嗣. 여기서 구사는 임신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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