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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극복한 고려의 왕, 현종

<원공국사승묘탑(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지난날 짐을 따르며 함께 고생하기로 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신하 된 자의 의리가 결국 이러한 것인가?”

“신이 비록 부족하지만, 목숨 바쳐 폐하와 함께하겠나이다.”

1010년 거란군이 또다시 고려를 침입하였어요. 고려의 패전 소식이 들려왔어요. 현종은 항복 대신 피난을 선택하였어요. 위급한 상황에서 지채문 장군이 함께 하기로 하였어요. 과연 현종의 피난은 성공하였을까요? 현종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위태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다

현종(왕순)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어요. 아버지 왕욱(안종)은 왕건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왕건의 손녀(헌정왕후)였어요. 그런데 둘은 혼인을 하지 않고 사랑해 왕순을 갖게 되었어요.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왕욱은 유배를 가게 되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왕순을 낳고 바로 세상을 떠났지요.

고아가 된 왕순을 불쌍히 여겼던 성종은 그를 대량원군으로 책봉하고 보살펴 주었어요. 그런데 성종이 죽고 목종이 즉위한 뒤로 왕순은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었어요.

“폐하, 간사한 무리들이 저를 위협하고 핍박하며, 심지어 죽이려고 하옵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원하여 주십시오.”

목종이 왕위에 있었지만, 실상 그의 어머니인 천추태후가 실제적인 권력을 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천추태후는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다음 왕으로 세우려고 음모를 꾸몄어요. 그런 천추태후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존재가 있었어요. 바로 왕순이었지요.

이에 천추태후는 왕순의 머리를 강제로 깎게 만든 후 절로 보내 버렸어요. 그러나 그걸로도 모자라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왕순을 해치려 하였어요.

많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다

어느 날 목종은 깊은 병에 걸렸어요. 더구나 그에게는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아직 없었지요.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목종이 아픈 틈을 타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어요. 이것을 알아차린 목종은 신하들을 불러 모았어요.

“짐의 병이 점차 위독해져서 곧 죽게 되면 태조(왕건)의 후손은 오직 대량원군(왕순)만이 남게 된다. 그러니 그대들은 충성을 다하여 왕위가 다른 성 씨에게 돌아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목종은 두 가지 명령을 내렸어요. 하나는 군사를 보내 당시 신혈사에 있던 대량원군을 불러오는 것이었어요. 또 하나는 서북면을 지키고 있던 강조를 불러들여 자신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강조가 개경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왕이 이미 죽었다고 하는 거예요. 강조는 깜짝 놀라 군대를 되돌렸어요. 자칫 잘못하면 반역자로 몰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후 강조는 왕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거짓 정보에 속았던 강조는 이 기회에 자신이 천추태후를 막고 혼란한 사태를 평정해야겠다고 결심하였어요.

“일이 여기까지 왔으니 그칠 수 없다.”

강조는 그대로 개경으로 진격하였어요. 정변이었어요. 강조는 당시 권력을 누리던 김치양을 제거하고, 목종을 폐위한 뒤 천추태후와 함께 궁 밖으로 내쫓았어요. 그리고 절에 있던 대량원군을 왕으로 옹립하였어요(1009년). 이분이 바로 고려의 제8대 국왕인 현종이에요.

거란이 침입하다

왕이 되었지만, 현종의 삶은 순탄치 않았어요.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조가 목종을 몰아낸 것을 구실로 삼아 거란의 대군이 고려를 침략하였어요. 거란의 두 번째 고려 침입이었어요.

첫 번째 전투는 흥화진에서 벌어졌어요. 거란군이 흥화진을 포위하며 거세게 공격하였지만,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흥화진을 지켜냈어요. 이에 거란은 거짓으로 강조의 서신을 꾸며 항복을 권유하였어요.

“나는 왕의 명령을 받고 온 것이지, 강조의 명령을 받았던 것이 아니다.”

양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람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굳건하게 성을 지켰어요. 할 수 없이 거란은 군사를 반으로 나누었어요. 절반은 이곳에 남겨 두고 나머지 절반은 개경으로 진격하도록 하였어요.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은 통주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거란군과 맞섰어요. 강조는 많은 창을 전차 앞에 꽂은 검차(檢車) 부대를 활용한 전술로 거란군을 잘 방어하였어요. 그러나 승리에 방심한 나머지 거란군의 역습을 받아 그만 잡혀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요. 고려는 패배하였고, 거란군은 개경으로 진군했어요.

피난길에 오르다

고려 조정은 거란의 침입을 두고 치열하게 대책을 의논하였어요. 신하들 대부분은 거란의 대군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라며 항복하자고 하였어요. 이때 강감찬이 홀연히 말하였어요.

“오늘의 일은 강조 때문이니 오히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적은 군사로 대항하기 어려우니, 적의 기세를 피했다가 부흥할 방도를 도모해야 합니다.”

강감찬은 현종에게 내일의 승리를 위해 피난할 것을 제안하였어요. 왕이 적에게 잡히면 전쟁은 끝나기 때문에 피난 또한 중요한 일이었어요.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을 버리고 남쪽 나주로 피난을 가기로 하였어요. 남쪽으로 길을 나선지 얼마 후 개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정말 간발의 차이였어요. 결과적으로 피난은 성공이었어요.

현종의 피난길은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어요. 날씨도 추웠지만, 피난길에 오른 현종을 사람들이 반가워하지 않았어요. 왕의 재물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왕을 무시하는 향리도 있었어요. 심지어는 현종을 해치려는 사람까지 있었어요. 다행히 용맹한 지채문 장군이 현종의 일행을 구해주곤 하였어요.

이런 가운데에서도 현종은 계속 사람을 보내 거란군과 협상을 진행하였어요. 거란군에게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거란 황제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왔기 때문에 전쟁을 빨리 끝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했거든요.

“거란군이 돌아간다면 거란까지 가서 항복하겠소!”

현종은 거란 황제에게 자신이 직접 찾아가 인사를 올리겠다고 약속하였어요. 고려 왕의 친조 약속은 거란 황제 입장에서도 전쟁을 끝낼 적당한 구실이 되었어요. 거란은 현종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물러났어요.

김은부를 만나다

현종의 피난길은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초라하기까지 하였어요. 그러다 공주를 지날 때였어요. 그곳의 관리였던 김은부가 현종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지요.

“김은부가 예를 갖추어 맞이하며 의복과 토산물을 바쳤다.”

현종은 김은부가 바친 옷으로 갈아입고 토산물은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일을 보던 관리들이 모두 피난을 가서 음식 마련이 어려워지자, 김은부는 직접 음식을 올리며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현종을 받들었어요. 현종은 김은부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어요. 김은부 덕분에 안전하게 피난길을 계속 갈 수 있게 되었어요.

거란군이 물러가고 현종은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공주를 들려 김은부의 집을 찾아갔어요. 이때 김은부는 맏딸을 시켜 현종의 옷을 지어 바치도록 하였어요. 이 인연으로 현종은 그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어요. 바로 원성왕후예요.

개경으로 돌아간 후 현종은 김은부의 둘째, 셋째 딸도 왕후로 맞이하였어요. 훗날 이들 왕후가 낳은 아들 셋이 현종의 뒤를 잇는 왕이 되었어요. 목종 때까지만 해도 고려 왕실의 대가 끊길 뻔했는데, 현종 대에 와서는 고려 왕실이 번성하게 되었어요.

거란의 3차 침입을 격퇴하다

현종은 전쟁으로 망가진 고려를 재건하기 위해 애썼어요. 거란과의 관계도 개선하고자 노력하였어요. 그러나 거란은 현종이 병을 핑계로 직접 거란을 직접 방문하여 조공을 바치는 것이 어렵다고 하자, 약속을 어겼다며 분노하였어요.

이에 거란은 고려에 강동 6주 지역을 내 놓으라 다그쳤어요. 물론 고려는 이를 거부하였어요. 그러자 1018년 거란은 또다시 고려를 침략해 왔어요. 세 번째 침입이었어요.

그러나 이번엔 고려도 달랐어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현종은 강감찬을 총지휘관으로 삼고 거란군에 맞서게 하였어요. 강감찬은 거란군이 지나는 길목인 흥화진 인근의 큰 냇물을 막고 매복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거란군이 오자 막아 놓았던 물줄기를 터놓고 공격해 고려군이 승리했어요.

거란군은 곳곳에서 고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자, 개경을 눈앞에 두고 철군을 결정하였어요. 그러나 강감찬은 두고만 보고 있지 않았어요. 거란군을 온전히 무찌르고 전쟁을 끝내버리고자 하였어요. 강감찬은 귀주에서 거란군과 힘껏 맞서 싸웠어요.

거란군의 시체가 들을 덮었고 사로잡은 포로, 노획한 말, 갑옷, 병장기를 다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이었으니, 거란의 패배가 이토록 심한 적은 없었다.
- 고려사 열전 권7 강감찬

1019년 2월 강감찬이 귀주 대첩에서 결정적인 큰 승리를 거둠으로써 거란군은 고려 땅에서 완전히 물러났어요. 현종은 강감찬의 큰 승리에 기뻐하며 직접 먼 곳까지 나와 축하해 주었어요.

불교의 힘으로 민심을 모으다

현종은 즉위하자 연등회와 팔관회를 다시 열도록 하였어요. 연등회와 팔관회는 국왕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고려의 대표적 불교 행사였어요. 성종 대 최승로의 건의로 중단하였지만, 현종은 백성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이들 행사를 부활시켰어요.

거란의 침입으로 고려가 위태롭게 되자, 현종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였어요. 현종은 대장경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자 하였어요. 불교 전적을 총망라한 대장경을 보유한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국가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었어요.

거란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침입하자, 현종은 신하들과 함께 큰 서원을 발하여 대장경을 판각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거란 군사가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 동국이상국전집 제25권 잡저

현종 때 만들어진 대장경은 처음으로 목판에 새긴 대장경이라는 뜻에서 초조대장경이라 불러요. 대장경 제작은 고려의 학문과 목판 인쇄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 외에도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현화사를 크게 창건하는 등, 현종은 불교를 통해 백성들을 달래고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고자 노력을 기울였어요.

<초조대장경 인경본 권제13>   
국립중앙박물관

지방 제도를 정비하다

현종은 거란의 침입과 피난을 경험하면서 느낀 바가 컸어요. 권력 기반이 약하면 아무리 왕이라도 신하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었어요. 특히 지방의 관리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나라를 다스리기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어요.

현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여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려야 하겠다고 다짐하였어요. 이에 현종이 가장 관심을 두고 애쓴 것은 지방 제도의 개혁이었어요.

“12주의 절도사를 폐지하고 5도호와 75도에 안무사를 두었다.”

우선 현종은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던 지방의 절도사(節度使)를 폐지하였어요. 대신 안무사(安撫使)를 지방에 파견하여 지방 세력을 감시하는 한편 백성들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어요.

몇 년 후 현종은 본격적으로 지방 제도를 정비하였어요. 앞서 설치했던 안무사를 폐지하고, 전국에 4도호부, 8목,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을 두었어요. 그리고 각 수령들이 거느릴 수 있는 향도들의 숫자를 정하였고, 지방관들이 지켜야 할 조항도 만들었어요.

“여러 도의 안무사를 혁파하고 4도호·8목·56지주군사·28진장·20현령을 두었다.”

현종은 향리들을 통제하기 위한 각종 방안들을 마련하고 지방 군현을 대대적으로 정리하였어요. 이제 고려의 군현제는 틀을 갖추게 되었어요. 강했던 지방 세력의 힘이 중앙에 흡수되면서 나라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고려의 지방 제도가 완성되었어요. 현종 대에 이루어진 고려의 군현제는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이후 큰 변화 없이 고려 말까지 지속되었지요. 대단한 업적을 이룬 현종을 당대의 학자 최충은 이렇게 칭송하였어요.

“나라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태평성대의 기반을 다지셨으니 ‘중흥지주’이옵니다.”

현종은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초를 겪었어요. 그의 출생도 남달랐어요.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지만,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어요. 힘들었지만 현종은 백성과 함께 거란과의 전쟁을 이겨 냈어요. 그리고 혼란한 가운데에도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지방 제도를 정비해 나갔어요. 현종 이후 고려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고 크게 번성했어요.

여러분은 고려의 임금 현종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느꼈나요? 우리도 현종처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볼까요?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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