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Ⅰ. 구석기문화
  • 1. 구석기시대
  • 3) 화석인골과 편년
  • (1) 편년별 화석인골
  • 라. 근대 호모 사피엔스

라. 근대 호모 사피엔스

 앞에서 중국의 호모 사피엔스와 비견하면서 한반도에서 홍적세 중기 말부터 홍적세 말기의 초기까지의 중기 구석기문화와 관련을 갖고 출토되는 화석인류를 초기 호모 사피엔스로 서술하였다. 여기에서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와 신석기문화를 이룩한 주체들 사이의 단계에 속했던 사람들을 근대 호모 사피엔스로 서술하고자 한다. 근대 호모 사피엔스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활동이 끝난 홍적세 말기의 초기 말부터 빙하기가 끝나고 完新世(또는 現世-Holocene)에 이를 때까지, 즉 후기 구석기문화를 갖고 있던 인류들을 지칭한다. 그리고, 후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의 틈이나 과도적인 시기에 중석기문화가 존재했었다고 하나 그 기간이 길지도 않고, 또한 중석기문화(Mesolithic culture)가 대륙에서는 존재했었다고 하나 한반도의 경우엔 아직은 그 존재 여부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가 있다. 또한 중석기문화가 존재했었다 해도 후기 구석기문화와 단절되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 아직은 입증되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내에서도 중석기문화유적이 발견된 예가 보고된 바 있었고 앞으로도 발견되리라 예견된다. 어떻든 한반도의 중석기문화 소유자들도 중국의 경우와 같이 근대 호모 사피엔스의 범주에 들어가리라고 본다.

 일부 형질인류학자들은 근대 호모 사피엔스단계에 상응하는 서구의 화석인류들을 해부학적으로 보인 현대인(Anatomically modern man)이라고 서술하기도 한다.105)Weiss, Mark L. & Alan E. Mann, Human Biology and Behavior, Little Brown and Company Inc, Boston & Toronto, 1975. 이는 형태학적으로는 현대인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나, 실제적으로는 형태학적 특징 중에는 계측이 가능하여 계량화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그러니까 인상이나 느낌이 다른 것이 있는데, 후자의 관점에서 양자가 다르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근대 호모 사피엔스단계에 들어선 인류들의 변이성에 관해서 논할 때는 표본의 크기가 통계학적으로 보아 유의할 정도의 크기(적어도 60개체 이상)가 되어야 그 변이성의 신뢰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중국의 경우에는 근대 호모 사피엔스단계의 화석인골이 후기 구석기문화와 관계를 갖고 출토되고 있으며 신석기시대인들은 형태학적 특징상 華北人集團과 華南人集團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들 신석기시대인, 즉 화북인집단과 화남인집단 사이의 형태학적 변이성의 크기가 이들 두 집단의 어떤 집단과 근대 호모 사피엔스 집단간의 변이성보다 작다. 다른 말로 중국의 신석기시대인들 사이에 보이는 지역적인 변이성이 중국의 후기 구석기시대인과 신석기시대인 사이에 보이는 시대적인 변이성보다 작다는 뜻이다.106)Wu, Zinzhi & Zhang, Zhenbiao, 앞의 글, pp. 107∼133.

 그러나 위와 같은 조건 아래서도 중국의 경우에는 근대 호모 사피엔스와 화북 및 화남인, 즉 중국의 신석기시대인들 사이에 공통된 형태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 즉, 그 예로 봉합형태가 비교적 단순하며, H형을 띤 익상골(H-Shaped pterygoid region), 비교적 넓적하고 평평한 코뼈, 비교적 약한 하비극(sub-nasal spine)과 광대뼈(zygomatic bone), 그리고 上顎骨(maxillary bone)에 의해 형성된 둔한 각도, 좁은 송곳니 齒間, 그리고 부삽모양을 이룬 앞니의 모습들을 들 수 있다. 중국의 신석기시대의 화북인간집단과 화남인간집단은 각각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집단들과 예컨대 코뼈와 같은 형태학적 특징상 유사성을 띠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107)Wu, Xinzhi & Zhang, Zhenbiao, 위의 글. 다른 말로 지역과 관련되면서 시대적으로 진화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형태학적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연구결과가 통계학적으로 그 변이성이 의미가 있다고 인정할 만큼의 충분한 표본의 크기를 갖고 분석되어진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의 경우에 있어서도 아직은 근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신석기시대인들에 관한 형태학적인 특징에 관한 한 신중을 기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진화적인 경향만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내에서는 후기 구석기문화유적과 유물은 물론 이와 관련을 갖고 출토되는 화석인골이 중기 구석기시대의 그것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完形을 띠면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중기 구석기시대의 그것들과 상대적으로 논술한 것이고 실제로는 발견된 예가 적은 편이고 그것도 완형을 띤 화석이나 인골이 출토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신석기시대인이나 古墳人의 인골이 출토된 것이 적고 이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 바꾸어 말하자면, 한반도의 근대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이들의 형태학적인 특징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물론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진화적인 경향을 지적하는 것조차도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로서는 지금까지 발견된 근대 호모 사피엔스 화석 및 인골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는다.

 한반도에서는 근대 호모 사피엔스로 이른바「승리산인」,108)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앞의 책(1978).「만달인」,109)김교경,<새로 발견된 만달리동굴유적>(≪력사과학≫ 4, 1981).「공주 석장리인」,110)손보기,<層位를 이룬 石壯里石器文化>(≪歷史學報≫ 35·36, 1967), 1∼25쪽. 그리고「점말 및 두루봉인」(홍수굴)111)손보기,<제천 점말동굴 발굴중간보고>(≪韓國史硏究≫ 11, 1975), 9∼53쪽.에 대한 형태학적 특징들이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이 비록 앞단계의 초기 호모 사피엔스보다 수적으로 많고 또한 그 지역적·시기적 분포가 조밀하지만 아직은 일반적인 형태학적 특징이나 진화적 경향을 지적하기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그러나 상술한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한반도내의 홍적세 후기의 초기 말부터 현세의 신석기시대에 이를 때까지의 후기 구석기문화를 소유했던 근대 호모 사피엔스는 중국의 후기 구석기문화를 소유했던 바로 중국에서 일컫고 있는 이른바 근대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인류이며, 이들은 봉합형태가 비교적 단순한 점을 포함하는 중국의 근대 호모 사피엔스와 신석기시대인이 공유하는 특징을 함께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 때문에, 이들 한반도의 근대 호모 사피엔스는 형태학적으로 보아 한반도의 신석기시대인을 포함하여 어떠한 인간집단보다도 중국의 근대 호모 사피엔스와 유사할 것이며, 또한 이들은 이런 중에도 관련을 맺고 있는 유적의 성격에 따른 얼마간의 한반도라는 지역적인 변이성과 우리 나라의 후기 구석기 및 중석기시대라는 변이성을 띠고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형태학적으로 보아 이들 한반도의 근대 호모 사피엔스는 화북인간집단이나 화남인간집단보다는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인에 보다 더 가깝고 유사할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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