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중기 구석기로 분류되는 문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것은 중기구석기문화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탓으로 볼 수 있다. 중기 구석기공작의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석기문화 자체만으로 그 시기를 판정하는 것은 커다란 무리가 따르고 있으며, 전기 구석기공작의 원시적인 특성이 이른바 중기 구석기라고 설정한 시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도 중기 구석기는 석기기술적인 양상이나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양상보다는 지층이나 고동물의 출현양상을 근거로 시대를 편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신생대 3기의 동물이 일부 적게 남아 있는 동시에 새로이 상부 홍적세의 동물이 대거 출현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유적을 중기 구석기에 포함시키고 있다.256)張森水,≪中國舊石器文化≫(天津科學技術出版社, 1987). 그래서 大荔나 또는 丁村유적 같이 연대 차이가 큰 유적들이 중기 구석기로 분류된 것도 있다. 이것은 아직도 중국에서도 석기문화의 특성을 기초로 한 구석기편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 중기 구석기로 분류되고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섬서성 대려, 산서성 許家窯, 북경 주구점유적의 제15지점, 요령의 鴿子洞 등을 들 수 있다.
주구점 제15지점은 고동물의 구성으로 대략 10여 만년 전의 상부 홍적세의 초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257)張森水, 위의 책. 이 지점에서 발견된 석기문화는 주구점 1지점의 문화적 계승자로 간주되고 있다. 석기들은 석영과 쳐트를 주로 하여 제작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수정도 보인다. 석기들이 주구점의 제1지점의 것보다는 전반적으로 정돈된 느낌을 주는데 제시된 도면에서는 유사르발르와박편이 보이고 그리고 일종의 원시적인 형태의 박편도끼도 보인다. 이외에도 첨두기·조각도·찍개 등이 나타나는데 전반적으로 2차가공의 정도가 제1지점의 석기보다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요령지방의 합자동동굴유적으로 大凌河변에서 발견되었는데 대능하에서 채취한 석영암을 재료로 석기를 제작하였다. 석기들은 원시적이며 자연평면을 타격면으로 이용한 박편들과 소형긁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258)鴿子洞發掘隊,<遼寧省鴿子洞舊石器遺址發掘報告>(≪古脊椎動物與古人類學報≫ 13-2, 古脊椎動物與古人類學硏究所, 1975), 122∼136쪽. 하북성에서는 난하의 제3단구에서 발견된 瓜村유적에서도 긁개, 소량의 첨두기와 조각도가 포함된 석기가 보고된 바 있는데 지질학적인 위치로 보아 중기로 구분하고 있다. 하북과 동북지방의 중기 구석기는 주구점 15지점을 제외하고는 소량으로 그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석기공작들은 흔히 주구점 제1지점의 석가공작과 비견되는데 이는 뚜렷하게 가공을 보이는 석기가 드물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大荔유적은 황하의 중류에서 발견된 유적인데 이 곳에서 나타난 고인류인골(大荔人)로 유명하며 낙하의 제1단구의 사력층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도 고동물의 연대로 보아 상부 홍적세의 초기, 즉 중부 홍적세에서 상부 홍적세로 이행하는 시기의 유적으로 보고 있는데 대려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과도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호모 사피엔스 따리엔시스로 명명한 바 있으며, 우라늄법에 의하여 약 20만년 전 전후로 보고 있다.259)Wu, X. and M. Wu, Early Homo Sapiens in China, Paleoanthropology and Paleolithic Archaeology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ed. by W. R. & J. W. Olsen, Orlando, Fla., Academic Press, 1985, pp. 91∼106. 약 3백여 점의 석기들이 발굴되었는데 긁개로 분류된 것이 가장 많으며 첨두기·석추·조각도 등이 채집되었다. 석편은 소형이었고 간단한 가공으로 석기를 제작하였으며 여러 가지 점에서 주구점 제15지점과 통한다고 보고 있으나 두 지점이 거리가 멀고 문화적인 차이점도 많아서「대려인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중국에서 중기 구석기로 분류되고 있는 석기문화 중에 가장 독특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정촌석기문화이다. 정촌유적은 산서성 汾縣에 있는데 대형석기를 위주로 한 석기공작이 발견되어 일찍부터 주목을 받은 유적이다. 유적은 汾河의 제3단구의 사력층 속에서 노출되었는데 10여 개의 지점에서 확인된 바 있다. 석기들 중에는 큼직한 박편에 만든 첨상기로 불리는 주먹도끼류의 석기가 있다. 이 주먹도끼류의 석기들은 원래는 대형첨상기로 불려 왔으나 최근에 전곡리주먹도끼가 발견된 영향인지 아슐리안석기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는 학자도 있는데260)黃慰文,<中國的手斧>(≪人類學學報≫ 6-1, 1987), 61∼68쪽. 이 석기공작은 중국의 다른 석기공작과는 분명히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석재가 혼펠스로 가공이 비교적 용이한 면도 있었겠지만 중국의 전통적 견해는 서후도 이래 발달되어 온 대형첨두기문화전통이라는 주장이다. 하여간에 정촌의 석기는 비교적 정선된 가공기술을 보이고 있어서 석기의 제작기술이 한걸음 앞서 발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촌의 구석기문화는 중기 구석기의 중기에 해당되는 문화라고 알려져 왔는데 이는 고동물화석의 구성이 아마도 주구점 15지점이나 대려유적보다도 늦은 것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고동물의 구성으로 볼 때 당시의 환경은 현재의 환경보다도 훨씬 따뜻한 편으로 지금의 회하 이남의 열대환경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중국에서 제시한 절대연대는 중부 홍적세의 후기로 주장되고 있다.261)張森水, 앞의 책.
허가요문화도 중기 구석기로 분류된다. 다량의 고인류화석과 함께 동물뼈 그리고 석기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262)賈蘭坡 等,<許家窯舊石器時代文化遺址 1976年度發掘報告>(≪古脊椎動物與古人類學報≫17-4, 1979), 277∼293쪽. 석기들은 대부분 석영암·화산암으로 만들었는데 2만점 이상의 석기가 발굴에서 채집되었다. 긁개류가 가장 많고 첨상기·석추·조각기 등의 소형석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석구가 1천점 이상이나 발견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석기들이 대부분 6㎝ 미만의 것이 많아서 소형석기전통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박편이 비교적 규칙적으로 만들어지고 가공이 정교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색이다. 주구점 15지점이나 대려유적의 석기와 동일한 전통이지만, 정촌유적의 것과는 다른 문화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데 고동물의 구성을 토대로 이러한 중기 구석기지점보다는 늦은 시기라고 하였는데 포유동물의 화석을 우라늄법으로 측정한 연대가 대략 8만년에서 13만년 전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10만년에서 12만 5천년 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263)Chen, T. and S. Yuan, Uranium-series dating of bones and teeth from chinese Paleolithic sites, 1988.
중국의 남부 귀주성의 桐榟유적에서는 중부 내지 상부 홍적세에 속하는 층에서 북경원인에 가까운 고인류화석과 함께 석기 12점이 발견되었는데 이 석기들 중에는 첨상기와 중국에서 각첨상기로 부르는 일종의 첨두가 있는 긁개들은 역석편에다 일부에 양면가공으로 제작한 것들이다.264)張森水, 앞의 책. 그리고 水城縣에서도 인골과 함께 석기들이 소수 발견되었는데 한쪽에 비교적 정밀한 가공을 한 각첨상기가 발견되었다. 중국의 남부지역에서는 석기유적이 많이 발견되지 아니하였는데 이는 동남아시아의 열대 또는 아열대지역에서 석기유적이 드문 것과 같은 현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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