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Ⅱ. 신석기문화
  • 3. 신석기시대의 생업과 사회
  • 1) 생업
  • (1) 수렵·어로·채취
  • 나. 어로와 조개채취

나. 어로와 조개채취

 강가나 바닷가에 터를 잡고 생활한 신석기인들은 바다짐승의 포획에서 보이듯이 수산자원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하여 어로라는 생산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였다. 패총유적에서는 대구, 농어, 참돔·검은돔·하스돔·감성돔·붉돔 등의 돔류, 다랑어, 숭어, 고등어, 가오리, 양놀래기, 명태, 청어, 방어, 가자미, 상어, 광어, 가오리, 졸복 등의 수십종이 넘는 고기종류가 발견되었다. 유적별로 보면 동삼동에서는 상어·참돔·다랑어·방어·대구·숭어가 주로 잡혔는데 특히 하층의 牧島期에 물고기뼈의 출토량이 가장 많다. 목도기에는 상어가 가장 많이 출토되고 이어 참돔과 대구가 그 뒤를 잇고 있는 반면, 頭島期에는 참돔이 가장 많이 잡히고 다음이 상어·다랑어이고, 상층의 影島期에는 다랑어가 주로 검출되어 시기별로 잡히는 물고기의 종류가 변화하였음을 보여준다. 상노대도에서는 참돔·졸복·농어·양놀래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면서 상층으로 갈수록 물고기종류가 증가하며, 연대도에서도 참돔이 가장 많이 잡히고 있다. 내만에 위치한 수가리는 물고기뼈의 출토량이 적어 대구·농어·가오리·어름돔·졸복이 소량 출토되고 있는데 대구와 농어는 만의 입구로 이동하여 어획한 것이다.

 민물고기도 강안유적에서 출토되는 그물추의 존재로 보아 당연히 잡혔을 것이나 패총으로 보존되는 바다물고기와는 달리 유적에서 검출된 예가 아직 없다.

 신석기시대의 어로기술을 출토유물로 고찰하면 작살이나 창·찔개살 같은 刺突具로 찔러서 잡는 자돌어법, 화살로 쏘아 잡는 弓矢어법, 낚시를 이용한 釣어법, 그물로 포획하는 網어법 등이 있다. 화살을 제외한 나머지 어로도구에 대하여 기종의 연구성과를 이하 간략히 소개해 보자.661)張明洙,<新石器時代 漁具의 形式分類와 編年硏究>(中央大 碩士學位論文, 1991).
金建洙,<韓半島의 原始·古代漁業>(≪韓國上古史學報≫ 20, 1995), 7∼101쪽.
李相均,<新石器時代의 南海岸과 西北九州地方의 生業>(≪全州史學≫ 4, 1996), 321∼349쪽.

 자둘구 중에서 작살과 찔개살은 주로 바닷가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 삼각형화살촉이나 톱날처럼 생긴 돌작살(石銛·石鋸)은 동삼동·상노대도·욕지도·연대도 등 남해안에서 융기문토기가 나오는 유적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石銛은 바다짐승, 石鋸는 상어류와 대형어류를 잡는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뿔이나 뼈, 멧돼지어금니로 만든 작살은 미늘이 한쪽 면 또는 양쪽 면에 하나 내지 여러 개가 달린 미늘작살, 가운데를 中柄과 결합이 가능하도록 만든 결합식작살, 허리를 만입시키거나 골수홈을 이용한 분리식작살 등 상당히 다양한 형태가 보인다. 동북지방에서는 고정식의 미늘 달린 작살이, 남해안에서는 분리식작살이 특징이다.

 낚시에는 낚싯바늘과 낚시축이 하나로 된 외낚시 또는 겹낚시와 양자가 분리된 결합식낚시의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갈고리형(曲釣針)과 찌르개형(또는 홀리개 : 直釣針)으로 구분되는데 갈고리형은 동북지방의 후기유적에서만 출토된다. 결합식낚싯바늘은 갈고리와 축을 결합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며, 전자는 뼈가 주로 이용되고 후자는 나무·뼈·돌 등 다양한 재질이 쓰인다. 결합식낚시는 동해안과 남해안의 오산리·동삼동·상노대도·연대도·송도 등의 이른 시기의 유적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데 오산리에서만 70여 개가 넘는 조합식낚시가 발견되었으며 동북지방의 서포항유적에서도 출토된다. 결합식낚시는 대구·다랑어 등 비교적 큰 바다물고기를 잡는데 이용하였으며 작살과 같이 外洋的 성격의 유적에서 출토된다.

 그물은 단독 또는 집단적 공동작업으로 이용되고 대량의 어획을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어로기술이다. 유기질이기 때문에 그물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동삼동유적에서는 그물이 찍힌 토기가 발견되어 신석기시대의 그물모습을 보여준다. 그물에 매달아 사용한 그물추는 유적마다 발견되고 있는데 두만강유역의 동북지방과 대동강·재령강·한강유역의 서부지방에서 주로 출토되며 남해안에서는 출토된 예가 적다. 서포항유적에서는 1기부터 그물추가 발견되어 지역에 따라서는 신석기 전기부터 그물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물추가 나온 예를 보면 서포항 2기의 17호 주거지에서는 31개, 3기의 8호 주거지에서는 100여 개, 금탄리 2기의 5호 주거지에서는 60여 개, 10호 주거지에서는 200여 개, 9호 주거지는 600여 개나 되는 그물추가 한데 뭉쳐 있었으며, 남경 31호 주거지에서는 3,000여 점이나 출토되어, 한 곳에 뭉쳐진 그물추를 1개체분의 그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그물이 이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662)서국태, 앞의 책, 96∼97쪽.

 기타 민속지적 자료를 감안하면 물길을 막거나 웅덩이를 파놓고 잡는 법, 나무울타리를 세워 만든 어살, 대나무나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통발, 간단한 망태기나 사내끼 등도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물고기의 서식습성과 어획법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예를 들면 조류가 잘 통하는 암초부근에 서식하는 참돔은 낚시와 찌르기가 효과적이다. 어류 중에서 농어는 염도가 낮은 연안이나 강어구에 산란되어 성장하다가 성어가 되면 바다로 나가는 어종으로 수가리패총에서는 7마리분이 한곳에 모여 있었으며, 겨울철에 리만해류를 따라 남하하는 대구 역시 4∼5마리분이 모여 있었는데, 이것은 이 어종들이 회유하는 시기를 이용하여 한꺼번에 잡았음을 알게 해준다.663)宋銀淑,<韓國 南海岸地域 新石器文化에 대한 考察>(서울大 碩士學位論文, 1991), 17쪽.

 조개류는 대부분 바다에서 채취되고 있다. 남해안패총의 경우 동삼동패총에서 42종, 상노대도패총에서 43종, 구평리패총에서 32종 등 유적마다 수십종이 넘는 조개류가 보고되고 있다. 이 조개들 중 식용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채집한 것은 그 종류가 제한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식용조개를 채취할 때 딸려 들어온 것이라 출토량이 극히 적다. 패총에서 출토되는 조개들은 유적의 입지조건에 따라 종류에서 차이를 보인다. 간조 때 노출되는 조간대에 서식하는 조개류로는 굴·가무락조개·백합·바지락·우렁이·갯고둥·눈알고둥·꼬막·소라 등이 있으며, 조간대나 외해의 비교적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는 조개류도 홍합·전복·피뿔고둥이·키조개·투박조개 등이 채집되고 있다. 후자는 잠수에 의해서만 채취가 가능한데 욕지도돌무지무덤 2호에 묻힌 장년기의 남성664)한영희·권상렬·임학종,≪욕지도≫(國立晉州博物館, 1989), 120∼121쪽.과 연대도집단무덤에 묻힌 성년 여성665)韓永熙·任鶴鐘, 앞의 글, 85∼87쪽.의 두개골에서 관측되는 外耳道骨腫이 잠수작업과 연관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666)욕지도와 연대도의 조개분석이 완료되지 않아 확실치 않지만, 잠수에 의해서만 채취가 가능한 조개류가 전체 조개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을 경우는 잠수작업에 의해 채취된 조개가 식용보다는 장식 등 다른 목적에 이용된 것일 가능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패총을 구성하는 조개류에서 굴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 요즘처럼 신석기시대에도 굴이 애용식품임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주로 채취된 굴은 굴(참굴)과 토굴이 있다. 참굴은 내만 등 염도가 낮은 조간대와 얕은 바다의 암초에 주로 서식하며 산란기가 6∼7월이고, 토굴은 수심 5∼20m의 암초에 착생, 서식하며 산란기가 5∼8월이라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 채취된다. 조개구성을 보면 구평리패총은 95%가 굴, 오이도패총667)任孝宰·朴淳發,≪烏耳島貝塚≫(서울大 博物館, 1988), 78∼79쪽.은 99%가 토굴과 굴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타 송도668)國立光州博物館,≪突山 松島≫1(1989).·북정669)金子浩昌·徐姈男,<北亭貝塚出土 動物遺存體에 對하여>(≪北亭貝塚≫, 釜山水産大 博物館, 1993), 44∼57쪽. 등의 남해안패총과 다른 서해안패총도 굴류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동일유적에서도 후기로 갈수록 굴의 크기와 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굴의 과잉채취로 말미암은 것으로 추정된다. 안면도 고남리패총670)金秉模·沈光注,≪安眠島古南里貝塚-1次發掘調査報告書-≫(漢陽大 博物館, 1990), 180∼181쪽.의 경우 하층에서는 무게비로 보아 굴이 93.5%, 바지락이 5.3%를 차지하나 상층에서는 굴이 68.8%로 줄어들고 바지락이 29%로 증가한다. 수가리패총도 5∼4층에서는 굴류가 85∼88%, 3층에서는 굴이 87∼95%를 점하는데, 상층으로 갈수록 굴의 크기가 소형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2층에서는 굴이 부족하여 대신 돌고부지와 바지락이 채취되고 있다.

 반면 동삼동패총에서는 토굴은 20% 정도에 불과하고 홍합이 60% 정도를 차지하면서 주로 채취되는데 이들 외에 전복·소라·밥고둥·따개비도 상당량 채취되었으며 釜山期에서는 소라가 많이 채취되었다. 홍합은 조간대나 얕은 바다의 수심 20m 암초에 서식하는 염수산조개로 동삼동유적의 외해성 성격을 잘 보여준다. 같은 외해성유적인 상노대도·상리·산등패총에서도 토굴과 굴·전복·소라·홍합 등 외해의 바다밑 암초에 서식하는 조개류의 출토율이 높지만 굴과 토굴이 역시 주종이라 유적에 따라 조금씩 조개구성의 차이를 보인다.

먹이감의
구 분
먹이감의 종류
(각 1㎏으로서)
폐기율
(%)
가식부
(g)
먹이감 100g당 Cal(Cal) 종류별 가식부의
Cal(Cal)
먹이감의 구분별합산
Cal(Cal)
식물식과 동물식의 Cal比(Cal)
根菜類 나리뿌리

칡(녹말)
얼레지(녹말)
15
15
95
80
850
850
50
200
128
120
336
350
1088
1020
168
700
2,976 12,631
(66.6%)
種實類 왕가래나무

도토리
30
75
30
35
700
250
700
650
612
672
180
374
4284
1680
1260
2431
9,655
魚 類 가다랭이
연어
참돔
문어
35
40
55
45
650
600
450
550
137
141
101
105
890.5
846
454.5
632.5
2,823.5 6,348.4
(33.4%)
貝 類 바지락

대합
가막조개
85
75
75
87
150
250
250
130
63
96
64
103
94.5
240
160
133.9
628.4
鳥獸肉 멧돼지
사슴
청둥오리
47
43
35
50
530
570
650
500
147
112
126
132
779.1
638.4
819
660
2,896.5

<표 1>일본 죠몬시대 주요 식료의 영양가

李盛雨,≪東아시아 속의 古代韓國食生活史硏究≫(鄕文社, 1992), 83쪽에서 인용. 원전은 鈴木公雄,<繩文時代論>(≪日本考古學を學ぶ≫ 3-新版, 1988), 205쪽에 실려 있음. 우리 나라의 자료가 없어 일본것을 인용하였으나 폐기율을 보여주는 자료로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개와 굴은 무게에 비해 속살이 적어 폐기율이 높으며 칼로리도 다른 어류나 견과류에 비해 낮기 때문에 대규모의 조개무지가 주는 인상과는 달리 실제로 전체 생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조개만 상용할 경우 단백질독에 중독될 위험성마저 있다. 다만 안정된 식량을 공급해 주며 다른 단백질원이 부족할 때 단백질을 쉽게 보충할 수 있다는데 큰 장점이 있으며, 어류·견과류와 함께 농경이 아니라도 정주생활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손꼽힌다(<표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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